[기자수첩] 한 꺼풀

  • 입력 2020.05.1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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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봉산탈춤·양주별산대놀이·고성오광대놀이 등 전국 13개 탈춤단체로 구성된 ‘한국탈춤단체총연합회’의 워크숍에 다녀왔다. 이날 정책설명차 왔던 문화재청 담당과장과 주무관은 일찍이 설명을 마쳤음에도 끝까지 기다렸다 뒤풀이에 참석, 광대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문화재청은 탈춤단체들을 관리하고 규제하고 민원을 받는 자리에 있다. 농민들만큼 거칠고 투박한, 그러나 농민들만큼 형형하고 날카로운 전국의 광대들이 두 공무원에게도 마음 편한 상대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남았다.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려는 최소한의 성의와 노력을 보인 것이다. 단 하루의 동행으로 해묵은 감정을 삭여낼 수야 없지만, 적어도 ‘밉살맞다’며 서로를 흘겨보던 마음의 벽이 한 꺼풀 벗겨졌다는 건 아침밥상의 공기로 체감할 수 있었다.

농식품부는 수급정책을 개선하는 데 있어 품목 농민단체인 전국마늘(양파)생산자협회를 정책파트너로 삼겠노라 공공연히 얘기해왔다. 하지만 수 개월이 흐른 지금 그 얘기를 순수하게 믿는 농민은 단 한 명도 없다.

농민들이 안간힘을 쓰며 지역단위·전국단위 조직 출범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릴 때, 참석은 고사하고 그 흔한 축전이라도 한 번 보낸 적이 있던가. 의무자조금을 출범한다며 농민-농협 간 갈등 구도로 몰아붙인 뒤 ‘당사자 합의’를 내세우며 슬쩍 빠지고 있는 모습은 또 어떤가. 농식품부에게 농민은 아직도 동행이 아닌 이용의 대상인 게 아닐까.

이번 마늘 수급대책도 그렇다. 수급대책이 발표되기 직전까지 협회 간부들조차 내용을 모른 채 농식품부의 입술만을 바라봐야 했다. 결과는 실망이었다. 지난해 7월 대통령의 ‘수급대책 개선’ 지시로부터 지금까지 개선책이란 의무자조금을 조물거리고 있는 게 전부일 뿐, 예년과 하등 달라진 것이 없다. 농민들이 제안해온 유통개혁과 수입대책과 정책세밀화는 증발해버렸다. 단 한 걸음이라도 말이 아닌 마음으로 농민들에게 다가갔더라면 농민들이 또다시 농사를 뒤로하고 여의도에 모여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정례화돼버려 무덤덤해진 것 같지만, 농민들의 상경집회는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농식품부는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의 벽을 한 꺼풀 벗기려는 최소한의 노력부터 다시 시작하자. 지금까진 그 최소한조차도 없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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