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업 정책, 농민 없이 성공할 수 없다

  • 입력 2020.05.10 18:00
  • 기자명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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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겨울 채소 재배 농민들에게 4~5월은 잔인한 한 해를 알리는 계절의 시작을 의미한다. 어느 한 작물의 가격이 좋으면 다른 작물 가격이 폭락하고, 이것저것이 동시에 폭락하기도 한다. 농민들은 모든 것을 운에 맡기고 투기하듯 작물을 선택하며 정부는 농지에 아무것도 심지 말라고 하는 게 현재 농촌의 모습이다.

지난해 20kg 양파 한 망의 가격은 4,000원까지 폭락했다. 그리고 1kg 당 최소 생산비가 2,500원이나 되는 마늘은 900원에 거래됐다. 뿐만 아니라 대파, 감자 등 겨울과 봄에 출하되는 모든 농산물의 가격이 사상 최악의 폭락을 거듭했다. 지난해 농민들은 바쁜 농번기에도 대규모 집회를 두 차례나 개최하며 제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마늘과 양파의 근본적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농민들은 그래도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지며 정부의 대책 수립 과정을 지켜봤다.

1년이 지난 2020년 현재의 모습은 어떨까?

겨울 대파는 이미 갈아엎었고 마늘은 다시 가격 폭락의 조짐을 띠고 있다. 수입양파로 조생종 양파는 가격 형성조차 못하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데 농민들과 함께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겉만 훑고 관료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만을 강요하니 2020년이라고 달라진 게 있겠는가? 없다. 한편으로 정부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은 억울하겠지만 현장 농민들이 느끼는 변화는 진짜 없다.

개과불린(허물을 고치는데 주저하지 말라). 주저하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농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없다고 감히 장담한다.

경당문노(농사에 관한 일은 당연히 머슴에게 물어봐야 한다). 농민만큼 농업을 잘 아는 이들이 있을까? 정부는 지난해 대통령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TF를 꾸렸지만 농민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농민단체, 특정지어 전농이 반발하자 슬쩍 농민회원의 이름을 본인 동의도 없이 끼워놓았다. 손에 흙 묻히는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 농업 정책에 애당초 담기질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넥타이 매는 이들과 최소한 서울대 혹은 유학 정도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 우리 농업 정책이 세워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난 1일 정부는 2020년 마늘 2차 수급정책을 발표했다. 정부 담당자는 자신에 넘치는 듯하다. 어느 해보다 1·2차 대책이 빨리, 또 예측되는 양보다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농촌 현장에선 아쉬움의 한숨만 터져 나오고 있다.

“정말 이게 다야?”

“뭐야, 작년에도 대책으로 나왔다가 실시도 못한 농협 수매가 대책으로 또 나와 있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경이 막혀있는데 수출도 1만톤이나 한다네? 허허 정말 이게 다야?”

진짜 이게 답니까? 과연 이 정책으로 시장이 반응할까요?

지난해 농식품부는 정말 뜬금없이 마늘, 양파 의무자조금을 만들어 농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는 대표조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농민들은 논의 끝에 4가지 조건으로 의무자조금을 통한 농민들의 역할도 함께 해내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4가지 조건은 첫째, ‘정부 정책을 후퇴시키지 않는다’ 둘째, ‘의무자조금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셋째, ‘공공분야에서 농산물 유통 50% 이상을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든다’ 넷째, ‘수입 농산물에 대한 대응을 자조금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정말 아래에서부터 만나고 논의해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중간에 끼어든 농협의 지분타령과 함께 농식품부는 왠지 모르게 농민들이 제시한 전제조건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의무자조금 가입을 받아 법적으로 결성 조건을 충족시켰다.

고장난명(손바닥 하나로는 손뼉을 칠 수 없다). 다른 한 손이 필요하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농민 없이 어느 것도 성공할 수 없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 때 지시한 농산물 가격의 본질적 문제는 ‘주저하면 실패한다’는 것이다. 이번 마늘 2차 수급정책부터 더 많은 예산을 투여해 과감히 진행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감소까지 예측해 예산을 투여해야 한다. 그것이 농민에 대한 코로나19 대응 대책이다. 별도의 지원금을 주는 것보다 가격을 보장해서 농민이 수익을 보게 하는 것이 진정한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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