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밤섬 배 목수⑤ 황포돛배 한강에 뜨다

  • 입력 2020.05.10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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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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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의 율도조선소에서 뚝딱뚝딱 풍선 한 척이 모양을 갖추어간다. 그 무렵이면, 들고나는 사람들로, 배 짓는 현장만큼이나 부산해지는 곳이 또 있었다. 율도조선소에 한선 한 척을 지어달라고 주문해 놓은, 행주나루 근방의 선주(船主)네 자택이다,

-일산에 진흙 파러 간 인부들은 아직 소식이 없나?

-주인어른, 저쪽 산모퉁이에 진흙 실은 마차가 오고 있습니다요.

-으음, 그래? 광목은 제대로 끊어왔겠지?

-그럼요. 돛 만드는 기술자 김 씨가 적어준 치수대로, 모자라지 않게 끊어다놨구먼요.

-선박 인수 날짜 며칠 안 남았으니 서둘러야겠어. 가마솥에 불은 때고 있겠지?

선박이야 조선소에서 만들지만, 새로 지은 풍선의 돛대에 매어달 황포 돛은 선주가 장만해야 했다. 지금은 수도권의 거대 신도시로 면모가 바뀌었지만, 예전엔 광목천에 흙물 들일 진흙으로, 행주나루 근동에서는 일산 지방의 황토가 질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왕년의 밤섬 배 목수 이봉수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커다란 가마솥에다 진흙물을 풀어서 붓고, 거기에 광목을 우겨넣고는 푹 삶아요. 그러면 천에 황톳물이 들 것 아녜요. 그걸 말리면 황포(黃布)가 되는 것이지요. 서른다섯 자 규모의 선박에 달 돛을 물들이는 데에는, 바지게로 열 짐이나 되는 진흙을 퍼 와야 했다니까요. 행주나루뿐 아니라 덕적도 같은 섬지방의 선주들도 밤섬의 조선소에다 배를 주문해놓고는, 돛은 자기네 집에서 직접 만들어 갖고 와서 달았어요.”

돛으로 쓰일 천에다 진흙으로 물을 들이는 것은 보기 좋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 황톳물을 들여야 온갖 비바람과 해풍에도 썩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이봉수 씨의 귀띔이다. 물론 돛에 가로로 대는 통대나무 역시 선주 측에서 장만한다. 그러니까 조선소에 가져가서 돛대에 매달아 바로 올리기만 하면 되도록, 황포 돛을 완전하게 구비할 책임이 선주에게 있었던 것이다.

밤섬의 조선소에서 한선 한 척을 완성하여 한강물에 띄우는 날이다. 달리 표현하면 한선의 진수식이 열리는 날이다. 그 날이 되면 율도조선소는 몰려드는 구경꾼들로 북적거린다.

-행주나루 조깃배 선주 양반이 동네 분들한테 막걸리 한 잔씩 대접하겠답니다. 다들 나와서 고사 술 한 잔씩 드세요! 술 못 자시는 양반들은 떡도 먹고, 배내리는 구경도 하세요!

밤섬 주민들이 조선소에 나와서 술 마시고 떡 먹는 일 말고도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건조된 선체에 달려 있는 두 가닥의 밧줄을 잡아당겨서 배를 강물로 끌어내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이다. 그러기 전에 선주가 데려온 뱃사공 너덧 명이 북을 치면서 한바탕 풍어를 비는 굿판을 벌인다. 당시 그 뱃사공들이 북장단에 맞춰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봉수 노인이 이렇게 흥얼거린다.

우리 선주는 신수가 좋아서 / 아래 웃뜸을 다 젖혀놓고 / 가운데 뜸에서 도장원(都壯元) 했구나 / 에헤이 어허이야…

어선의 선주가 재수가 좋아서, 아랫바다 윗바다를 다 젖혀놓고 가운데 바다에다 그물을 쳤는데, 몰려든 조기떼를 만나서 만선을 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자, 술도 먹고 떡도 먹었으니, 서해바다 용왕님이 깜짝 놀라도록 기운차게 배를 내려보세!

드디어 배가 한강에 띄워지고, 선주와 사공들이 그 풍선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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