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제기했던 ‘쌀 생산조정제’, 지금과 판박이

[창간 20주년 특집] 20년 전 한국농업 그리고 오늘

  • 입력 2020.05.09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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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최근 개편된 공익형 직불제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쌀 생산조정제의 시행이다. 쌀 가격 하락의 문제를 농민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쌀 생산조정제는 20년 전인 2001년 처음 제기된 바 있다. 사진은 관련 내용을 보도한 한국농정 제21호 1면 모습. 한승호 기자
최근 개편된 공익형 직불제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쌀 생산조정제의 시행이다. 쌀 가격 하락의 문제를 농민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쌀 생산조정제는 20년 전인 2001년 처음 제기된 바 있다. 사진은 관련 내용을 보도한 <한국농정> 제21호 1면 모습.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2000년 11월 창간호부터 2001년 12월까지 본지의 지면을 돌아보고자 한다. 20년 동안 450만명에 달하던 농민의 숫자는 300만명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의 농업계 현안이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것도 많았다. 이에 본지는 20년 전 농업계를 조명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올해 초, 새로 시행되는 공익형직불제와 연동될 ‘양곡관리법’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으로 농정 당국은 신곡 수요랑을 넘는 공급량을 정부가 자동으로 매입할 근거를 세웠다. 쌀 가격을 보전할 새로운 안전장치가 생기긴 했지만, 정부가 쌀을 격리하게 될 경우 그 대가로 농민들은 정부의 쌀 생산면적 조절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한다는 조항이 붙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강제로 쌀 생산면적이 조절되는 첫 사례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한국농정> 제21호(2001년 5월 17일자) 1면 첫 기사는 ‘쌀 생산조정제’라는, 당시로서는 수면 속에 잠들어있던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오늘날 언급되는 생산조정제와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농민들은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당시 제기의 근원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그해 5월 14일 농경연에서 열린 비공개 간담회에는 양정의 핵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생산조정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논에 벼 대신 타 작목 재배를 지원하는 형태로, 방법 자체는 2년 전 농민들의 자율 신청을 유도한 타 작목 재배 지원사업과 동일하다.

가격안정보다 생산조정 먼저 논의

농림부는 남북관계 진전가능성 등을 이유로 공급과잉을 전제한 생산조정제를 검토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으나, 농경연은 이미 생산조정제를 시행 중인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들며, 쌀 산업 발전과 농가 소득의 보호를 도입 배경으로 들며 이 제도의 채택을 정식으로 제기했다고 전해진다.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및 6.15선언 이후 이산가족상봉, 경의선 철도 기공식 등 각종 교류와 대북지원이 이어지던 2000년대 초반, 농정 당국 또한 이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고 농민들도 농업분야 교류와 대북 쌀 지원에 대한 기대가 컸던 시대였다.

취재가 불가능했던 비공개 간담회였지만 기사는 당시 회의장에 들어갔던 참석자들의 후일담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했다. 생산조정제를 직불제와 연계할 수 있고, AMS(감축대상보조)에서 자유롭다는 점을 들어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는데, 오늘날 당정이 제시한 공익형직불제 및 양곡관리법의 도입 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 7%의 계절진폭(다음 해 대비 수확기 쌀값이 전해 수확기 가격보다 높은 정도)을 허용하기 위해 공매량을 제한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직불금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직 쌀 가격의 폭락을 막을 확실한 안전장치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기사에서도 농민단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쌀 가격하락의 고통을 농민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간과하지 못할 중대사안”이라는 비판이 보인다. 공교롭게도 당해 쌀 수확량은 당국의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고, 쌀값 대폭락 사태에 전국에서 쌀 적치 투쟁이 벌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변동직불제가 자리 잡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벼를 갈아엎는 농민이 나올 정도였다. 이 시기 쌀값 폭락문제로 학을 뗀 농업계는 결국 2005년에 이르러 새로운 가격안정제도인 변동직불제 시행에 합의했고, 올해 공익형직불제의 시행으로 결국 폐지되기 전까지 농민들에게 쌀 목표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액에서 85%를 보전해줬다.

20년 전 생각 그대로, 변화 없는 농정

세월이 흘러 생산조정제는 ‘논 타작물 재배지원사업’이란 이름으로 지난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전에도 이미 두 번의 생산조정제가 실시됐는데, 쌀 재협상에 대비해 2003년부터 3년간 실시된 쌀 생산조정제와, 2010년부터 2년 간 시행된 논 소득기반 다양화사업이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근본적인 내용은 최초의 구상과 동일하다. 당국은 농민들의 자율적 참여로 생산조정제를 만들어가겠다는 계획이었으나, 타 작목 재배를 통해 동등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참여하길 바란 것은 무리수와 다름없었다. 결국 앞선 두 번의 생산조정제는 수급조절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한 채 한시적 조치로 마무리 됐다.

2018년 생산조정제 카드를 다시 꺼내든 정부는 첫해 5만ha 면적의 논이 타 작물 재배로 전환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3월 28일의 신청 마감기한까지 목표 대비 단 9%의 면적만 신청됐다. 기한을 한 달 가까이 늘렸음에도 채 절반의 신청도 받지 못하자 당국은 참여가 우수한 지역에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당근’을 내놓았고, 결국 일부 지역에서 공공비축미 수매량을 볼모로 농민들에게 생산조정제를 종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생산조절제 시행 때부터 늘 반복되는 문제였다.

또 허겁지겁 채운 생산조절 면적들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재배환경의 문제로 수확조차 하지 못하거나 판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고스란히 농민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농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수급조절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반강제적’ 쌀 생산조정제는 그 2019년에도 똑같은 면적을 목표로 고스란히 시행됐는데, 이번에는 전국 평균 60%의 신청률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업의 신청자격에 산조정제 참여를 조건으로 건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는 농민들이 많았다. 갑작스레 식량위기론이 급부상한 올해 역시 생산조정제가 시행되는데, 그나마 목표 면적은 2만ha로 줄어든 상황이다.

 

전남 해남군 이장단이 지난 2018년 4월 5일 쌀 생산조정제 관련 농림축산식품부를 항의방문해 간척지농업과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전국쌀생산자협회 제공
전남 해남군 이장단이 지난 2018년 4월 5일 쌀 생산조정제 관련 농림축산식품부를 항의방문해 간척지농업과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전국쌀생산자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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