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지미에 한우 농민이 들어오다

[ 한국농정신문 창간 20주년 기획 ] - 충북 진천 관지미의 1년 #20

  • 입력 2020.05.09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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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송아지는 너무나 귀엽습니다. 동물과 고기를 모두 좋아하는 저로썬 앞으로 자가당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괴로워할 것 같습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송아지는 너무나 귀엽습니다. 동물과 고기를 모두 좋아하는 저로썬 앞으로 자가당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괴로워할 것 같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날, 도시는 점점 팽창하고 농촌은 몰락해갑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농정>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 연재기획을 시작합니다. 30년을 도시에서만 자란 청년이 1년 동안 한 농촌마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가축을 키워 고기를 생산하는 ‘축산’도 크게는 농업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아시나요? 우리 농업의 한해 생산액은 약 50조원 정도 되는데요, 고기 소비가 증가하면서 이 생산액의 약 40%를 축산업에서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재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농업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최근 관지미에는 뜻밖에도 한우를 키우는 농민이 새로 들어왔는데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우 영농에 대해 배움을 청했습니다.

 

4월의 마지막 날부터 이어진 황금 같던 연휴가 끝났습니다. 1년 내내 그렇긴 하지만, 특히 농민들 입장에서는 ‘빨간 날’의 의미가 별로 없는 시기가 바로 이때쯤이랄 수 있겠습니다. 연휴 막바지였던 지난 5일에 관지미를 찾은 저는 마을을 드나든 이래 처음으로 목격한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작건 크건 한 집도 빠짐없이, 마을의 모든 농가가 각자의 논밭에 나와 있는 모습이었죠.

이장님 댁은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제외한 일가족 전체가 전부 고추를 심기위해 마을 남쪽 입구 밭에 모여 있었고, 그 근처에서 홀로 밭을 가꾸는 박순자 할머니도 뭔가 새로운 것을 심기 위해 삽을 들고 힘겹게 땅을 찍고 있습니다. 마을의 트랙터들도 전부 나갔습니다. 김상만 노인회장님은 커다란 비료살포기를 단 채 논을 누비고 있고, 윤영중 선생님은 조금 더 일찍 시작하셨는지 그 단계를 지나 이제 논에 물을 댄 뒤 써래로 쓸며 모심기 전의 최종 단계를 마무리합니다. 농번기는 말 그대로 정말 바쁜 시기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네요.

그 풍경들을 지나 마을을 가로 질러 북쪽 끝에 다다르면 이곳 농가들과는 조금 다른 일을 하는 농민이 있습니다. 지난해 마을에 새로 생긴 축사의 주인 한근석(64)씨입니다. 한씨 역시 본래는 경기도 용인의 한 농촌에서 소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입니다.

산업단지 문제 때문에 아직 관지미에 살 집은 얻지 못했지만, 축사 부지에 컨테이너로 지은 농막에 매일 머물고 있으니 사실상 마을의 일원이 된 셈이죠. 그래서 한씨는 지난해 말 대동계에도 나가 마을에 처음 인사를 했었습니다. 관지미에 처음 올 때 축산업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한씨를 통해 그의 한우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까합니다.

“암소가 있으면 송아지가 나오잖아요? 예전에는 집마다 그걸 팔아서 자식들 학교를 보내곤 했었죠.”

지금은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예전엔 농사짓는 집이라면 으레 몇 마리의 소를 함께 키우곤 했었죠. 관지미에선 유일하게 김상만 노인회장님이 아직도 댁 옆에 붙은 조그만 외양간에서 열 마리 남짓 소들을 키우고 있고, 이제 소는 없지만 아직 축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도 눈에 띕니다.

“농민들이 각기 조금씩 키워 공급하던 물량이 점점 집약돼, 전문 축산인 소수가 많이 키우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면 되나요?”

“그렇죠. 많이 키우면 외국인노동자도 두어 명씩 두고요. 본 곳 중에서는 1,800두를 키우는 사람도 있었어요.”

전문 분야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젖소나 돼지 그리고 특히 아예 기업 자본이 진출한 고기용 닭의 경우 사육의 규모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여쭤보니, 요즘 ‘본격적으로 소를 키운다’라고 하면 보통 사육규모가 세 자리 수 단위는 물론이고, 1,000두가 넘는 농장도 더러 있다고 하네요.

통계자료를 찾아봤더니, 올해 일사분기(잠정치) 기준 ‘소(한육우) 있는 농가’는 9만3,396가구이고 이 중 100마리 이상의 소를 키우는 집은 7,143가구(약 8%)네요. 전체 농가 수에 비하면 소를 키우는 집도 매우 줄었을 뿐더러, 사육두수의 분포가 흥미롭습니다. 전체 사육두수는 약 316만 마리이고, 그 가운데 40%가 넘는 130만 마리를 8%의 농민들이 키우고 있네요. 이 집단의 가구 당 마릿수 평균은 182마리쯤 되니, 확실히 한씨의 말대로 한우 역시 규모화가 꽤 진행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한쪽 동에 소 50마리가 차 있고, 그게 다에요. 이제 두 번째 동 채울 소들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고요. 여기서 150마리에서 200마리까지 혼자서 키울 생각이었죠.”

설명을 듣고 본격적으로 축사 구경에 나서보니, (비록 아직까지는 소들이 1/4만 차 있긴 하지만) 이 넓은 축사를 혼자 꾸려갈 수 있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습니다. 그동안 연재의 몇몇 장면에서 농사(특히 벼)의 자동화·기계화를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셨을 텐데요, 축산업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규모화가 덜한 한우 역시 예전에 비하면 꽤 많은 점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관지미에 소를 키우러 들어온 한근석씨가 소들에게 자동으로 물을 먹일 수 있는 급수장치를 설명하며 살펴보고 있습니다.
관지미에 소를 키우러 들어온 한근석씨가 소들에게 자동으로 물을 먹일 수 있는 급수장치를 설명하며 살펴보고 있습니다.

일단 축산업에서도 트랙터는 매우 요긴하게 쓰이는데요, 소들의 똥을 치우거나 쌓을 때 트랙터 전방에 부착한 로더로 편리하게, 그리고 덜 괴롭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또 소들의 주식이 될 볏짚을 묶어 둔 거대한 곤포 사일리지(흔히 수확이 끝난 논에서 볼 수 있는 흰색 원통이 바로 그것입니다)를 트럭에서 내려 적치하는 작업도 트랙터의 몫입니다. 그래선지 한씨의 트랙터는 마을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55마력급 트랙터보다는 훨씬 크기가 큰 100마력급이죠.

이밖에도 각종 잡무에 쓰이는 1톤 트럭과 소들을 우시장에 내다 팔고 또 실어올 4.5톤 트럭 및 짐칸 구조물 등도 보였습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장비는 급수기였는데요, 수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물을 채워주기 때문에 한우의 하루 물 섭취량이 50L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장비들 때문에 예전과는 달리 혼자서도 100마리가 넘는 소를 키울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각 소의 상태에 맞춰 짚과 사료를 아침·저녁으로 챙기는 것만큼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기 때문에, 혼자 소를 돌보는 한씨는 용인에 집을 두고도 관지미에서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렇게 키운 소의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요? 일단 소를 키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비육’이라고 해서 송아지를 키워 소가 최대한 커졌을 때 시장에 내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번식’으로, 암소 위주로 키우며 최대한 많은 송아지를 생산해 앞서 얘기한 비육 농민이 사가도록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나 같은 사람(규모가 작은)은 보통 번식하고 비육을 같이 하는데 그건 일관사육이라고 하지. 새끼 나와서 수놈이 나오면 살 찌워서 팔고. 암놈이면 그놈이 또 새끼 낳고. 그렇지 않고 비육만 하려면 시장에서 수놈을 사서 키워야 하는데, 송아지 값이 비싸요.”

일관사육을 하는 한씨의 축사는 어느 정도 성장한 비육우(수)와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비육우, 번식우(암), 그리고 송아지들로 구분돼 있었습니다. 소는 사람처럼 출산까지 열 달이 걸리는데요, 보통 평균적으로 30개월은 키워야 출하를 할 수 있는 비육우에 비하면 ‘생산’의 주기가 짧죠. 그러니 규모가 작은 농가 입장에선 기간이 훨씬 긴 비육에만 매달리기에는 위험 부담이 클 것입니다. 반면 대량 생산을 하는 사육농가는 상대적으로 암소의 인공수정이나 임신 등의 문제를 신경 쓸 필요 없이, 갖춰놓은 시설과 다져진 자본력을 바탕으로 송아지를 사서 비육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다 큰 수소는 보통 800kg 이상 나가면 팔게 되는데, 도살한 소의 도체율(잡은 소에서 식용으로 쓸 고기의 비중)은 잘 나오면 60% 정도. 단순 계산으로 잘 큰 소를 잡아 고기 500kg이 나오면, 최근 도매가격이 1kg당 2만원 선(1등급 기준)이니 1,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겠네요. 더 높은 등급인 1+나 1++를 받으면 가격도 더 오르겠죠.

원가도 살펴볼까요? 한우 사육 호황이라 할 수 있는 요즘의 숫송아지 가격은 마리에 400만원 이상 나간다고 합니다. 암송아지는 320만원 정도. 그리고 한씨의 개인 경험에 따르면, 소 한 마리가 다 클 때까지 보통 350만원 어치를 먹어치운다네요. 이리저리 원가를 생각해보니 크지 않은 규모에서는 번식이나 일관사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쉽게 와 닿습니다.

소들이 배출한 분뇨는 농사에 쓸 만한 좋은 거름이 됩니다. 한씨가 인근 농경지에 거름을 퍼주고 있습니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았기에 아직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얘기가 통하면 볏짚과 거름을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네요.
소들이 배출한 분뇨는 농사에 쓸 만한 좋은 거름이 됩니다. 한씨가 인근 농경지에 거름을 퍼주고 있습니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았기에 아직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얘기가 통하면 볏짚과 거름을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네요.

한씨는 여전히 주소지인 용인에서 쌀과 옥수수도 기르고 있는데, 부친의 농사를 물려받은 그는 보다 나은 소득을 위해 경작지보단 소 사육의 규모를 더욱 늘리기로 영농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축산업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고, 무엇보다도 고향에 있는 기존의 축사는 한씨 자신도 다녔던 초등학교와 너무 가까웠습니다. 사육을 계속 하는 것도 미안한데, 부지를 덧대 규모를 확장하는 건 현실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무리가 있었죠.

결국 아예 거주지까지 함께 이전할 생각으로 새로운 축사 부지를 찾던 한씨는 충청도며 경상도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고, 그러다 찾은 곳이 바로 이곳 관지미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마을에 허락도 구했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었지만 군은 이상하게도 계속 허가를 미뤘습니다. 결국은 행정소송까지 진행해 축사를 세우는 데까진 성공했는데, 얼마 뒤 접한 소식이 바로 관지미 일대를 뒤덮는다는 산업단지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꼴이에요. 고작 50마리를 키우려고 옮긴 건 아닌데 말이에요.”

한씨가 논을 사서 만든 축사 부지엔 축사 두 동이 들어서 있습니다. 절반 정도는 공터로 비어있으니 두 동은 족히 더 들일 수 있는 공간인데, 산업단지 계획이 취소되지 않는 한 그럴 수가 없는 것이죠. 이주까지 생각한 한씨가 지금 임시로 들여놓은 컨테이너 안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지미에 몇 집이 더 들어올 공간이 있고, 듣자하니 귀촌을 원하는 사람이 더 있는데도 유입이 막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죠. 새롭게 접한 축산의 세계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 안타까운 사정에 배움의 시간이 그저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상황이 해결된 이후 마을 안에서 볏짚과 거름을 허물없이 주고받는 풍경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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