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화기애매’한 농민수당

  • 입력 2020.05.03 18:57
  • 기자명 강정남(전남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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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남(전남 나주)
강정남(전남 나주)

농민수당을 드디어 탄다! 감격스럽다! 얼마 안 되는 농민수당이지만 돈의 문제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감격스럽다. 농업의 다원적, 공익적 가치가 드디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이기에 지역상품권 몇 장이 아니라 그동안 농사짓고 산 세월의 무게를 받는 기분이다. 일단은 즐겁고 기쁘다.

그러나 이 즐겁고 기쁜 기분도 잠시 동안이다. 나도 농민인데, 여성농민인데, 남편 이름으로 지급된 농민수당을 기꺼이 100% 즐겁게 받을 순 없다. 나의 가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직은 이르다고, 아직은 예산이 부족하다고, 어쩔 수 없다고 행정은 말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말 ‘화기애매’한 농민수당이 돼버렸다.

일단은 받은 것이니 즐겁게 쓰는 것이 중요! 어찌하오리까. 한 번에 다 써버린다. 받자마자 나가는 농민수당이다. 밀린 농자재값이나 농약값으로 통째로 들어가 버리는 일이 거의 다반사, 자신을 위해서, 정말 하고 싶은, 쓰고 싶은 곳에 썼다는 사람을 별로, 아니 거의, 보지 못했다. 그 점이 참 아쉽다.

특히 여성농민 입장에서는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밥 한 번 편하게 사주고 싶고 맘 편하게 화장품, 맘 편하게 옷 한 벌도 사고 싶고 그렇다. 그러나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가 우선인지라 어쩔 수 없이 외상부터 갚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참 씁쓸한 마음을 접을 수 없다.

어찌됐건 주위 의견들을 보면 모두 농민수당을 받으니 즐거운 모양이다. 이제껏 힘들게 농사지어도 대접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우리들 아닌가! 기껏 농사지어 놓으면 수입농산물 정책에 떠밀려 가격폭락이나 하니 우리 농민들이 꼭 그런 신세로 느껴지는 게 서글펐다. 농사라는 것이 수급조절에 실패하거나 국가 대 국가의 협약으로 수입되는 물량에 의해 농산물값이 들쭉날쭉 할 수밖에 없다.

즉 농산물 가격은 농민들 손을 떠나갔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굴비 엮듯 빚으로 농사지어서 남는 것이라곤 아픈 몸과 허탈한 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수당이라는, 농업의 가치를 인정해서 준다는 농민의 공익적 수당이라니 받는 순간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앞으로 계속 ‘화기애매’하지 않고 ‘화기애애’한 농민수당이 되기 위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바꿔야 한다. 모든 농업정책은 농가단위가 아닌 농민개별단위! 그래야 소외되는 농민이 없다. 그리고 여성도 똑같은 농민이다! 농업정책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농민수당이라는 가치를 통해 농업의 새로운 모습이 그려졌으면 좋겠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역할에 맞는 소농, 가족농 중심의 농업정책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서 무너지지 않는 농업·농촌이 되고 먹거리 담당의 최일선에 있는 농민, 즉 사람중심의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지속가능한 농촌은 바로 지속가능한 가치 있는 농업정책에 있다는 것을 명심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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