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밤섬 배 목수④ 돛단배 한 척 장만하세요

  • 입력 2020.05.03 18:55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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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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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의 율도조선소에서 제작했던 한선(韓船)은, 멀리 강원도의 정선 일대에서 벌목한 아름드리 소나무를 재료로 삼았다. 야산 언덕에서 벌목꾼들에 의해 베어진 소나무들은 일정한 길이로 잘려서 물가로 운반되고, 거기서 다시 다른 원목들과 합쳐져서 뗏목으로 엮인다.

뗏목 위에 올라서 삿대를 짚어가며 강을 타고 내려오는 그 사람을 떼꾼, 혹은 뗏사공이라 불렀는데 크기에 따라 뗏목 하나에 두 명이 타기도 하고 네 명의 떼꾼들이 올라타기도 했다. 그 떼꾼들이 뗏목을 엮어 타고 출발하는 곳이 바로 정선의 아우라지 나루였다.

아우라지를 출발한 뗏목이 최종 목적지인 마포나루까지 오는 데에는, 물길을 잘 만나면 5~7일쯤이 소요되었다.

“뗏목을 타고 온 떼꾼들은 마포나루 앞 강가에서 제재소 사람들에게 원목을 팔고는 강원도로 돌아가 버려요. 당시엔 마포에만도 제재소가 열일곱 군데나 있었고, 중랑교 근방에는 서른 군데가 넘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일했던 밤섬의 조선소에서는, 제재소에 가서 가공된 목재를 필요한 만큼 사다가 한선을 지었던 것이지요.”

1930년대 말에 밤섬의 율도조선소에서, 배 짓는 목공기술을 배웠던 이봉수 씨의 얘기다.

배짓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견습생 이봉수는 하늘같은 선임 목수들의 심부름을 하느라, 땅에 발붙일 틈도 없이 뛰어다녔다는데, 궁금한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다.

-어르신, 행주나루 김 사장이 주문한 배는 분명 서른다섯 자 크기의 한선이라고 했는데, 제가 지금 배 밑판 길이를 재보니까 스물다섯 자밖에 안 되는데요?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여기 설계도를 잘 봐라, 밑판에서 대각선으로 치켜 올라가는 이물(船首)하고 고물(船尾)의 길이까지 다 합해서 서른다섯 자니까, 밑바닥의 길이가 더 짧을 수밖에 없지. 너 종이배도 안 접어봤나!

서른다섯 자 길이라면 약 12미터가량이 된다. 당시 연평도 조기잡이배의 크기가 대개 그쯤 되었다. 참고로 배의 맨 밑바닥에 해당하는 ‘밑판’으로는 다른 부분보다 두꺼운 판자를 사용하였는데 그 두께가 보통 세 치(약 9센티미터) 정도 되었다. 그래서 옛 시절 뱃사람들의 속담에 “세 치 아래가 저승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한선을 지을 때에는 쇠못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피새 못이라고 불리는 나무못을 쓰는데, 한 치(약 3센티미터) 두께에 길이가 한 자 두 치인 이 피새 못은 소나무가 아닌 참나무로 깎아 만든다. 워낙 많이 소용되었으므로, 아예 피새 못만을 깎는 목수가 따로 있었다.

밑판이 완성되면 밑판 양쪽으로 ‘두름’이라고도 부르는 삼판(杉板)을 대는 작업이 이어지고, 이물과 고물작업을 한 다음에, 승선한 사람이 딛고 설 갑판을 깔면 일단 선체가 완성된다.

그러고 나서도 별도로 만들어야 할 두 가지가 더 있다. 키와 돛대를 제작하는 일이다. 키는 참나무를 깎아 별도로 만들면 되지만, 문제는 돛대다. 돛대는 아래쪽이 굵고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급격히 가늘어지는 나무라야 안정적인 무게중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나무를 골라 세워야 하는데 서른다섯 자 배라면 맨 앞쪽에 세우는 돛대는 열두 자, 중간 돛대는 서른 자, 그리고 맨 뒤 고물 쪽에 세우는 돛대는 서른다섯 자 정도의 높이여야 한다.

자, 그럼 이제 다 됐느냐고? 아니다. 바람을 받을 돛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황포 돛은 목수들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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