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장에서 서성이다

이중기의 농사이야기 - 41

  • 입력 2008.07.14 17:54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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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쯤 복숭아를 딸까 싶은데 시세가 어떤지 궁금해 애마를 몰아 공판장으로 나가 보았다. 생각보다 복숭아는 그렇게 많지 않고 살구며 자두는 아직도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꽝꽝 울려대는 확성기 소리 사이로 오랜만에 보는 검붉은 얼굴들과 인사를 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다들 용하다. 언제 저렇게 많은 물건을 장만하고 깨끗한 옷단장까지 했는지 나는 늘상 그들이 신기하다. 저들은 매일같이 공판장에 나오면서도 나들이옷에 말끔하게 면도까지 하는 부지런함을 지니고 있다.

뜻밖에도 그곳에서 영수를 만났으니 아무리 폭염경보가 내린 상황이라도 술 한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식당으로 들어서니 중환이가 벌써 몇 병째의 맥주를 비우고 있다. 나는 식당 아지매를 보고 술값은 키가 쬐끄만 저 어른에게 받으라고 하면서 맥주 두 병을 시켰다. 그런데 영수는 아버지를 모시고 온 입장이라 두어 잔으로 끝내야 할 형편이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영수는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예상에도 없던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중환이가 돈을 찾아오고부터였다. 오늘 중환이는 마당에서 1등을 했다. 6만6천, 6만 원을 받았으니 사람들은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1등 했으니 술 한잔 사라는 소리가 진동을 했고 그렇게 술자리는 질펀하게 벌어졌다.5천 원짜리 안주가 몇 번이나 들어왔고 2천5백 원짜리 맥주가 자주 들어왔다.

“나는 5만5천 원은 받았으이 이만하믄 농사 잘 지은 거 아이가?”

불콰해진 누군가가 무슨 소리 끝에 조금은 억울하다는 듯이 누구에게 계산서를 들이대며 큰소리를 쳤고 그 누구는 눈앞에 들이미는 계산서를 들여다보더니 냅다 던져버렸다.

“야 이연아야, 센타가 중요하지 그깐늠의 한두 상자 십만 원을 받으면 머하노!”

“그래, 그거는 니 말이 맞다.”

“아 씨발, 촌늠들 공판장에 나왔다가 어떤 사람 복상 한두 상자 6만 원 받는 거 보고는 다른 거는 깡그리 이자뿌고 6만 원짜리 그거만 가지고 내들 떠든다 아이가. 그라믄 머하노. 센타가 얼마를 받느냐가 중요하지, 센타가.”

“그라믄 니는 내가 한두 상자만 6만 원 받았는 걸로 보이나?”

술 취한 중환이의 눈초리가 찌푸려진다. 나는 술을 찔끔 질끔 마시면서 괜히 애마를 몰고 왔다며 후회를 한다. 10분도 안 걸리는 집까지의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이다. 형 물건은 센타가 6만 원 아이가. 그러믄 보자, 고미(평균) 5만 원이 되고도 남네. 하이고야, 씨발 나도 그런 농사 한번이라도 지었으면 원이 없겠다.

나는 아까부터 한 마디도 거들지 않고 술만 홀짝거린다. 에어컨은 팡팡 돌아가고 술은 흔전만전인데 내일 복숭아를 가지고 와서 이 많은 인간들에게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그만 아찔해진다. 도끼로 찍어 놓은 것처럼 쩍쩍 갈라진 천도복숭아가 자꾸 눈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올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선프레이는 수확이 끝나면 베어내리라고 다시 한번 작정을 한다. 푼돈이 아쉬운 시기에 출하가 되는 것이라 뻔히 알면서도 심었고, 봉지를 씌우면 갈라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도저히 거기까지는 손이 미치지를 않으니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는 밖으로 나간다. 어쨌거나 아직까지 올해 복숭아 가격은 괜찮은 편이다. 전반적으로 봄에 결실이 좋지를 않았고 거기다가 날씨가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여러 날 째 폭염경보가 내려진 이 장마기간에 땀 흘리는 보람이 있다. 사실 복숭아농사를 짓는 사람의 연봉은 그해 날씨에 따라 희비가 교차한다. 지금처럼 땡땡 가물어야 당도가 높아 제 값을 받을 수 있지 수확기에 주야장천 비가 쏟아지면 공판장마다 농사꾼들 비명소리가 중매인 손가락을 깨물곤 한다. 지난 두 해가 그랬다. 더구나 기후가 변하면서 우리나라는 두 번의 장마가 찾아온다. 7월 장마는 그나마 견딜만하지만 느닷없는 불청객 8월 장마가 농사를 결단내고 있다. 이제는 8월 장마를 피하는 품목으로 가야되지 않는가 싶기도 하다. 나는 베어 먹다가 던져버린 살구며 자두 복숭아들의 추레한 몰골이 굴러다니는 공판장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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