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 재해, 기댈 건 보험뿐 … 올해부턴 보상률도 반토막

과수 적과 전 보상률, 올해부터 80→50% 축소
자연재해는 잦아지는데 … 농가 버팀목 ‘부실’

  • 입력 2020.05.0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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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자연재해는 농경의 역사와 함께한 농민들의 오랜 적이지만, 재해로부터 농민들을 떠받칠 안전장치는 2020년 오늘까지도 발전은커녕 퇴보하고 있다. 매정한 재해보험과 싸늘한 정부의 손길 아래 농민들은 재해 앞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농민들이 재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은 농작물재해보험이다. 농협손해보험이 운영하고 농식품부가 관여하고 있는 만큼 일반적인 보험에 비해 공적 성격이 약한 건 아니지만, 민간보험이라는 정체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피해율 산정 등을 둘러싼 보험사측과 피해농가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으며, 거듭되는 보험료 할증은 비록 80%의 보험료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농가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번 과수 냉해의 경우엔 올해부터 새로 바뀐 보험 규정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올해 농작물재해보험은 적과 이전에 발생한 피해에 대해 보상률을 종전 80%에서 50%로 대폭 삭감했다. 설사 피해율을 100%로 인정받는다 한들 보험금은 절반밖에 받지 못하며, 20%의 보험료 자부담을 생각하면 실질적인 보상은 더 적어진다. 기존의 보상률로도 농가 적자 논란이 이어져오던 차에 50% 보상률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다.

예외도 있다. 최근 3년 연속 보험금을 탄 적이 없는 농가는 최대 70%의 보상률을 적용받을 수 있다. 하지만 70% 역시 기존 80%에서 10%나 삭감된 것이거니와, 잦은 재해로 보험료 할증을 부과받고 더 많은 돈을 내는 농가가 오히려 50%의 낮은 보상률을 감내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다.

이같은 보상률 삭감 조치는 농민들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농식품부는 지난 1월부터 “(보험금 부당수령을 위한) 농가의 과도한 적과를 방지하고자 보상률을 삭감했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며, 최근엔 “최근 3년간 과수 4종의 농가지불금 대비 보험지급금이 1.6배 높게 나와, 보험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보상률 감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새로 덧붙이고 있다.

현장은 노발대발하고 있다. 일부 고의 적과 사례가 있을 수는 있어도 과도한 적과는 수세관리와 내년도 수확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전체 농가를 매도할 만한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농민들이 체포조를 만들어 (해당 발언을 한) 농식품부 관계자를 잡아들여야 한다”는 웃음기 없는 농담까지 등장했다.

보상률 등 농작물재해보험에 관련한 제반 사항은 농식품부가 주관하는 ‘농업재해보험심의회’에서 결정하는데, 애당초 여기에 농민 참여가 제한적인 것도 문제다. 심의회는 학계·전문가 7명, 관계부처 7명, 보험사업자 4명, 농민단체 2명, 시민단체 1명으로 구성돼 보험 당사자인 농민 의견 반영이 어려운 구조다.

물론 반토막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건 보험에 가입했을 경우다. 부담스러운 보험료와 실망스러운 보험금 탓에 최근 전국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40% 수준이며 보험 필요성이 더 높은 과수품목만 떼서 보더라도 61.6%에 불과하다. 절반 혹은 그 이상의 농가들이 일단 보험의 테두리 밖에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딱히 정부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2001년 농작물재해보험이 도입된 이래 농식품부는 사실상 재해 대응의 모든 책임을 보험으로 미루고 있다.「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라 농약대·대파대 지원이 기계적으로 이뤄지지만 신통치는 않다. 과수 냉해의 경우 대파대는 어지간해선 해당사항이 없고 농약대가 ha당 199만원씩 지급되는데, ha당 실제 들어가는 농약대는 400만원 수준이다. 그 외 생계비 및 자녀 학자금, 영농자금 상환연기 등의 고만고만한 대책들이 있지만 조차도 피해율이 최소 30%를 넘어야만 수혜 가능하다.

농협도 보험 외엔 뚜렷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달 9~30일 냉해 사후관리를 위해 농작물 영양제를 50% 할인판매했지만, 판매 개시 이틀이 채 안돼 물량이 동나는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 할인판매 수량은 전국 9만6,000병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현재 집계된 피해면적에 간신히 1회를 살포할 수 있는 양이다. 1인당 2회분 정도로 구입을 제한했다 하더라도 절반의 피해농가는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셈이다.

보험도, 정부도, 농협도 온전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재해가 일어나면 늘상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 된다. 하지만 농식품부 관계자는 “많은 정치인들이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지만 여러 재해 중에서도 냉해는 손쓰기 어려운 재해”라며 “농가가 냉해 시기를 피해 농사를 짓거나 품종을 바꾸는 자발적 노력을 기울이는 등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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