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97] 충고

  • 입력 2020.05.03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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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며칠 전 농업기술센터 직원과 오랜 시간 자동차로 이동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직원분께선 “귀농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센터 직원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어떤 분은 귀농하기 전 이미 유튜브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공부하고 온다”고 했다.

최근 유튜브에는 각종 농사정보가 넘쳐난다. 그 정보의 대부분은 객관적 정보라기보다 주관적인 체험이나 경험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유익한 정보도 많지만 유해한 가짜 정보도 많다.

암튼 유튜브, 귀농지원센터 등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근거로 귀농인들은 작목선정이며 경작 규모, 입지 등의 영농계획을 이미 확정해 놓은 뒤 관에 지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다양한 농민들을 봐 온 직원들로서 그런 계획은 위험하고, 우리 지역에 맞지 않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얘기하는데, 귀농인들은 오히려 지원해 주지 않으려 한다며 화를 낸다고 한다. 이 경우 직원들은 더 이상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 귀농인이 바로 나인 것 같다며 파안대소한 적이 있다.

귀농 초 그러니까 2016년 농사라곤 지어본 적 없는 초짜농부인 내가 친환경 사과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당시 농업기술센터 소장님은 “사과는 관행농사로도 어려운데 친환경농사는 더더군다나 어려우니 재고해보라”며 “소과보다는 대과가 어떠냐”고 충고했다. 그때 나는 친환경 농사를 해야 하고, 사과 중에서도 소과인 알프스오토메는 수세가 강해 친환경농사가 비교적 용이할 것이고, 판로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말을 믿고 있었던 터라 그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5년여가 지난 지금에서야 그 충고가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친환경 사과농사는 소과던 대과던 결코 쉽지 않으며, 대과 중심의 소비패턴이 소과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더 지나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친환경 과수농사는 베테랑 농민에게도 어려운 농사며 그 중에서도 사과와 배는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농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농사기술도 없는 귀농인이 처음부터 친환경 과수농사를 하려 해서는 안 되고, 권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터득했다. 농사기술 하나에서 열까지 지도받을 수 있는 경험 많은 멘토가 늘 곁에 있거나, 판로까지 챙겨줄 수 있을 경우에나 가능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과수는 묘목 식재 후 3년 정도 수입이 없기 때문에 당장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 과수농사를 시도하기란 쉽지 않다.

귀농해 친환경 농사를 꼭 하고 싶다면 비교적 쉬운 기술로 매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목을 선정하는 것이 좋다는 센터 직원의 충고가 옳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충고를 듣지 않은 대가를 단단히 치르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나는 친환경 사과농사를 계속해 보기로 하고, 금년부터 소과인 알프스오토메 대신 대과인 시나노골드로 수종을 갱신해 다시 한 번 노력해 보기로 했다. 기왕 시작한 친환경 사과농사니 어렵더라도 앞으로 5년 더, 귀농 10년차를 목표로 달려가 보기로 했다.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앞으로 있을 귀농 10년의 농사 체험은 결코 작지 않은,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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