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윤년 윤사월의 농가월령가

  • 입력 2020.04.26 18:12
  • 수정 2020.04.26 18:23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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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전남 구례)

농사경력 30년이 다 되도록 체감을 하지 못하는 여전히 초보농부다. 아스팔트농사 정치농사 진짜배기 농사까지 전부 다 그렇다.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는 겨울을 보내며 씨앗을 예전보다 먼저 뿌렸으니 한창 자라다 서리를 맞이하는 건 당연했는지 모른다.

너도 나도 농민수당은 당신들이 고생한 게 맞다시며 내 한 표는 꼭, 하시길래 농민국회의원 결실을 보리라는 기대에 부풀기도 했었다. 아침 뉴스엔 공익형 직불금이 5월 1일부터 시행된다며 자랑 일색이다. 쌀 전업농들도 그리 생각할까? 쌀농사는 이후에도 100% 자급을 자랑할 수 있을까?

농업재해보상을 위한 예산을 긴급재난기금으로 돌렸단다. 서리 맞은 꽃눈에 서릿발 설 일이다. 학교급식이 중단되고 대중음식점과 공공급식처는 사회적 거리두기 덕에 모임자체가 취소돼 개점휴업 상태라는데 그곳에 먹을거리를 공급하던 농민들도 덩달아 된서리를 맞고 있다.

2020년 봄 그렇게 가나 싶었는데 다시 봄이 시작되고 있다. 올 4월이 윤사월이라네. ‘농사도 한창이라~ 집에 있을 틈이 없네~ 느티떡에 콩찐이로~ 천렵이나 해보세~.’ 4월의 농가월령가 중에 내 눈에 띈 구절이다. 농사도 바쁘고 이유는 각색이지만 집에 있을 틈도 없고 이 나이 되도록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느티떡과 콩찐이라니…. 눈에 확 띈다. 아니 먹어봤지만 무엇인지도 모르고 먹었을 수도 있었을 게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기본 편향이 있다는데 그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는 듯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관심 없는 분야의 이야기는 아무리 해봤자 귓등으로 흘러듣는 경우가 태반이니 그때 이야기 했었잖아 하고 이야기 하면 그랬던가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분명한 사실 조차도 못 보는 경우가 생기니 이게 뭔 일인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옳다고 하는 만큼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언제 틀릴지는 알지 못 한다’ 했던 모 철학자의 말처럼 객관적 사실을 겸허하게 들여다보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를 늘 잊지 않아야겠지 싶어도 늘 눈앞에 벌어진 일들 앞에 아연실색하는 경우가 태반이니 아직도 도를 터득하기는 먼 듯하다.

‘꽁으로’ 생긴듯한 윤년 윤사월이라니 싶다. 모든 것이 엉망이 돼버린 일상을 되돌리기 딱 좋은 윤사월 봄이라니 심장박동이 다시 뛴다. 다 녹아버린 새순이지만 다시 또 순을 틔울 것이 분명하다. 기다리면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중학교 졸업이후 처음으로 집에서 함께 일하는 딸들이랑 들판에 나가봐야겠다.

늦은 감이 있지만 봄나물을 뜯어 밥상을 차리고 훌쩍 커버린 풀들을 제압하고 다시 씨앗을 뿌리고 새순을 맞이해야겠다. 옆에 딸들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덕분에 다 커버린 딸들을 실컷 볼 수 있으니….

느티나무 잎을 뜯어 느티떡도 만들어 보고 콩찐이도 만들어 봐야겠다. 상상만으로도 바쁘다 바빠. 농번기가 시작됐다. 당장 칼을 들고 들판으로 나가봐야겠다. 얘들아 봄 마중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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