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ASF 피해 한돈농가의 사정

3년치 순이익만 보장하는 폐업지원 … “장치산업 현실 모른다”
현대화·축사 적법화 부르짖던 농식품부는 재입식 ‘나 몰라라’

  • 입력 2020.04.19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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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으로 경기북부지역 한돈농가들의 사육이 중단된 지 어언 반년이 흐르고 있다. 특히 정부정책에 맞춰 한돈농장을 운영하려한 이 지역의 젊은 후계농들은 앞날이 막막한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는 최근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 입법예고를 통해 ASF 피해농가 폐업지원에 관한 기준을 제시했다.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폐업희망농가는 중점방역관리지구 지정 이후 연간 출하마릿수당 순수익액의 3년치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 기준은 FTA체결에 따른 농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동일하다. 폐업희망농가는 축사를 철거, 용도변경 또는 폐기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건축·도로개설 등으로 사용하고자 철거·폐기한 경우이거나 타 축종으로 변경한 경우 등은 지원금 지급에서 제외된다.

ASF 피해지역 한돈농민들은 한돈농장의 현실과 거리가 먼 비현실적인 지급기준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성경식 대한한돈협회 연천지부장은 “슈퍼 주인에게 물건값만 주고 문은 닫으라는 격이다”라며 “한돈은 시설장치산업인데 이해가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연천지역 농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모돈 100두 규모의 농장은 시설투자에만 7억원에서 13억원이 필요하다. 철거를 한다면 별도로 1억원 넘게 들어갈 걸로 보인다.

축사시설 현대화사업이나 미허가축사 적법화에 참여한 농가들은 더욱 폐업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 연천군에서 모돈 1,200두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는 A농가는 “축사 적법화에 20억원 이상이 들어갔다.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적법화를 했는데 매달 그 이자조차 재촉받고 있다”라며 “사료에 물린 융자도 많다. 은행에서 연장을 하지 않고 다음달이라도 갚으라고 하면 폭삭 망할 수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젊은 후계농일수록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정부 정책사업에 참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의 피해가 심각한 것이다. 규모화·현대화를 강조하는 정부 정책사업은 가축전염병 등의 재난이 들이닥치면 축산농가에 더욱 큰 피해를 몰고 오기 때문이다.

7,000두 규모의 농장을 갖고 있는 후계농인 B씨는 “현대화사업을 받아 2,000두 규모 농장을 키웠다. 시설도 스마트팜으로 지어 총 70억원 가까이 들었다”라며 “한달 이자만 1,000만원인데 시작하자마자 사육조차 못하고 있다”고 사정을 전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재입식 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농식품부는 감감무소식이다. 발생농장 반경 3㎞에 들어가 예방적살처분을 한 C씨는 “환경분석조사에서 음성이 나왔다. 나 말고 모든 예방적살처분 농가들이 시료검사에서 모두 음성이 나왔다. 그런데도 해당 공무원은 재입식에 관해 ‘지침이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명준 ASF 희생농가 총비상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폐업지원에 대해선 “판례를 살펴보면 영업보상뿐 아니라 건물과 시설장치 보상을 한 사례들이 적잖다. 차후 소송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오 사무국장은 “경영안정자금 등 정부 융자지원은 있으나마나다. 대다수 특례보증은 3억원이 한도인데 이미 사료구매자금 등으로 한도를 채운 상황이다. 예방적살처분 보상금은 직원 인건비와 사료값, 융자 이자상환 등을 따지면 사라진다”라며 “재입식하려면 다시 돼지를 구입해야 하는데 결국 빚을 져야 한다. 그조차 언제 입식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ASF 희생농가 총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월 11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에 모여 서울로 향하는 차량시위를 진행했다.
ASF 희생농가 총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월 11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에 모여 서울로 향하는 차량시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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