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할망·하르방, 복지정책의 대상? 농업정책의 사각지대?

  • 입력 2020.04.19 18:00
  • 기자명 안경아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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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아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안경아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노인과 할망·하르방은 다르다. 할망·하르방은 반전이 있는 사람들이다. 할망은 밤마다 팔다리가 쑤신다고 하지만, 20대 장정도 할망의 감귤 따는 속도와 마늘 심는 속도를 쫓아갈 수 없다. 하르방은 인터넷을 잘 못하지만, 온도계를 보지 않고도 하우스 온도를 알아맞힌다. 할망·하르방에게 농사짓던 농지는 있지만, 주머니 현금은 충분치 않다. 할망·하르방은 운전을 못하지만, 버스 요금은 무료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할망·하르방에게 받은 농산물을 안심하고 먹는다. 노인은 복지정책의 대상이지만, 할망은 할머니, 하르방은 할아버지를 의미하는 제주어로서 마을 어딜 가나 계신다.

농업정책의 사각지대에 할망·하르방이 있다. 사각지대는 운전자가 사이드 미러로 안 보이는 지대를 말한다. 사각지대의 차량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운전자가 고개를 돌리거나, 룸미러로 재차 확인해야 안전운전을 할 수 있다.

우선, 농가 중 대부분은 할망·하르방이다. 통계청 ‘농림어업조사’에 의하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농가 경영주 연령은 만 65세 이상이 60.3%(61만5,788호), 노년기 후반인 만 75세 이상은 28.5%(28만9,480호)인 것으로 나타난다. 20년 전인 1998년에는 만 65세 이상 농가 경영주 비중이 29.6%(41만8,310호)에 불과(?)했다. 20년 후 할망·하르방이 농가 경영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높아질 것이다.

농업정책의 사각지대에 할망·하르방이 있는지 예를 들어보자. 할망은 아침 9시 한의원 문이 열리자마자, 침을 맞고 돌아와서 양배추를 심고 콩밭의 풀을 맨다. 50년 간 농사를 지었던 할망의 무릎골관절염은 업무상 질환인가? 노인성 질환인가? 무릎골관절염은 무릎연골이 달아 없어지는 퇴행성 질환이다. 쪼그려 앉는 자세와 허리 굽히는 자세는 풀을 매기 위해, 양배추를 심기 위해 불가피하게 취해야 하는 자세다. 장기간 반복된 쪼그려 앉기 자세와 허리 굽히기 자세는 무릎연골 손상에 영향을 미친다.

조선대학교 농업안전보건센터에서 제5기 국민건강영양조사(2010~2012년) 자료를 활용해 50~79세의 직업별 무릎골관절염 유병률을 분석한 결과 일반 근로자의 유병률은 8.4%인 반면, 농업인의 유병률은 16.5%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인의 무릎골관절염 유병률이 일반근로자보다 약 2배 더 높다. 40년 간 농사를 짓고 있고, 여생도 농촌에서 보낼 할망. 할망의 무릎골관절염은 업무상 질환인가? 노인성 질환인가?

할망의 무릎골관절염 예방, 진단, 치료에 드는 비용은, 할망의 경제사정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업무상 재해 보상차원이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을 수립해 지원하면 안 되겠는가?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인적자원 보호로 접근하면 안 되겠는가? 청년농부들이 계속 농사지어 남는 것은 아픈 몸이라는 것을 본다면, 계속 농사짓고 싶을까?

의료관계자와 이러한 실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보건소에 공무원 자리부터 만들자고 한다. 농촌진흥청에서 운영하던 농업인 건강관리실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보건진료소에서 제공하던 스트레칭 프로그램은 없어지고 주민센터의 프로그램과 통합됐다고 한다. 농업인에게 제공되는 보건복지정책이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보험료 경감으로 충분한 것인지 돌아볼 일이다.

농업 생산성이란 거울로 비춰보면, 할망·하르방의 건강은 농업정책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할망들이 양배추를 못 심으면 외국인이 심으면 되고, 농기계가 심으면 된다. 제초를 못하면 제초제를 뿌리면 된다. 이조차 타산이 맞지 않으면 수입산을 먹으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토마토나 파프리카처럼 스마트팜에서 생산된 경쟁력 있는 농산물만 국산을 먹으면 될지도 모른다. 이러다 보면 한국에서는 농업이 사라질 것 같다.

“살면 살아진다.” 정신지 작가의「할망은 희망」에 나오는 말이다. 전쟁과 가난을 온몸으로 넘으며 살아온 할망이 작가에게 나누어준 삶의 지혜다. 작가는 청춘의 좌절과 우울을 할망을 만나며 치유 받았다고 고백한다. 한 청춘이 할망의 고단했던 삶을 통해 치유받고 힘을 얻는다. 할망은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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