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재해보험, 개정 앞서 농민 의견 수렴해야

과도한 적과 막겠다며 과수 4종 착과감소보험금 30% 하향조정
농민 “수세 잃으면 3년 넘게 고생하는데 누가 그리 하겠나”
국고 지원 받는 NH손해보험, 과도하게 이익 챙긴단 평가도

  • 입력 2020.04.19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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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이상저온으로 피해를 입은 경기 안성의 배 과원에서 지난 13일 농민이 얼어죽은 꽃을 살피고 있다.
이상저온으로 피해를 입은 경기 안성의 배 과원에서 지난 13일 농민이 얼어죽은 꽃을 살피고 있다.

 

“과수 농작물재해보험이 지난해와 다르게 조금 바뀐 건 알고 있었지만, 과도한 열매솎기를 방지하겠다고 보상 수준을 50%로 하향조정했다니 현장을 전혀 모르기에 가능한 처사였다고 본다.”

올해 초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는 사과·배·단감·떫은감 등 과수 4종의 농작물재해보험 보상 수준을 ‘적정화’했다고 밝혔다. 농가가 보험 제도를 악용해 보험금으로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고 판단, 적과 전 발생한 피해에 대한 착과감소보험금을 약 30% 하향조정해 지급키로 한 것이다.

이에 3년간 보험금을 한 번도 수령하지 않은 가입 농가의 경우 적과 전 재해로 발생한 피해율에 자부담을 제한 뒤 산정된 착과감소보험금의 70%를 지급받을 수 있고, 보험금 수령 이력이 있다면 50%를 지급받게 된다. 농식품부는 이를 ‘개선’이라 홍보했지만 농민들은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어 현장에 대해 전혀 모르기에 할 수 있었던 개정이자 개악이라 일갈하는 상황이다.

경기 안성에서 배를 재배중인 농민 A씨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적과를 과도하게 하는 농민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농민들은 올해처럼 냉해가 발생해도 수세 유지를 위해 평소보다 두 배에서 세 배 많은 시간과 인력, 돈을 들여 수분작업을 진행한다. 한 번 수세를 잃으면 이를 바로잡기까지 최소 2~3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최대한 열매를 맺게 하려 안간힘을 쓰는 데 얼마 되지도 않는 보험금을 타려 적과를 과도하게 하는 농민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지난 5일과 6일 연이은 이상저온에 이어 9일 내륙지방의 최저기온이 영하 6.5℃까지 떨어진 탓에 13일 기준 농작물 재배면적 약 7,374ha에 저온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정부의 재해 지원대책은 복구비 지원과 보험 가입 농가에 한정된 보험금 지급이 전부인데, 보험 가입부터 피해 산정, 보험금 지급 모두 보험 사업자에 유리하게 운영되고 있어 농민들은 약관 개정을 비롯한 사업 운영에 농민들이 일부분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 이상저온으로 80~90% 수준의 냉해를 입은 경기 안성의 농민 B씨 역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보험에 가입했지만 지난 2018년 냉해로 보험금을 수령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산정된 보험금의 50%밖에 지급이 안 된다고 한다. 예측하지 못한 재해가 닥쳤을 때 적절한 보상을 받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 보험인데, 지급 보험금을 깎으려 아등바등하는 NH손해보험을 보고 있자니 농민을 상대로 자기네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B씨는 덧붙여 “보험이 처음 도입됐을 당시부터 보험을 가입해오고 있는데 해마다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보험이 개정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농작물재해보험을 판매하는 곳이 NH손해보험뿐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국민의 세금을 들여 NH손해보험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농민들은 NH손해보험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지만 NH손해보험은 이러한 농민들을 그저 등쳐먹으려 혈안이 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NH손해보험 관계자에 따르면 농작물재해보험 약관과 사업 운영 지침 개정은 농림축산식품부 및 농업정책보험금융원과의 협의를 거쳐 진행된다. 보험요율 관련 내용은 금융감독원의 인가를 받아야 하지만 대개 농어업재해보험법에 따른 ‘농업재해보험심의회’를 통해 보험 사업 전반에 대한 내용을 협의·진행하는 실정이다.

한편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박흥식, 전농)도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정부는 정책보험이 피해 당사자인 농민보다 농협 등 보험회사의 이익을 보장하고 있다는 농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농은 “전국 과수 재배 농가들이 품종에 상관없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번 냉해가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고 높은 강도로 발생했다는 뜻이지만 보험 약관 변경을 통해 올해부터는 전체 피해의 50%만 인정해주고 있다. 게다가 예년에 피해를 입어 보험금을 한 번이라도 수령한 농가의 자부담이 높아지도록 설계한 것은 농작물재해보험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보험사의 이익을 위해 피해율을 낮추는 약관 변경을 용인했다. 농작물재해보험은 정부가 보험료의 50%를 지원하는 정책보험이지만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약관 원상 복구와 기후변화에 대한 근본적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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