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겠지만 … ‘고기반찬’ 사라질지도

해외발 ‘식량파동’ 나면 우리 식탁에 어떤 영향 줄까
쌀 소비 줄고, 늘어난 육류·밀은 수입 비중 매우 높아

  • 입력 2020.04.19 18:00
  • 수정 2020.04.19 18:3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가축 사육에 쓰이는 사료의 원재료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해외발 식량파동 발생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충남 홍성의 축사에서 한 농민이 사료를 주고 있다.한승호 기자
가축 사육에 쓰이는 사료의 원재료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해외발 식량파동 발생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충남 홍성의 축사에서 한 농민이 사료를 주고 있다.한승호 기자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가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있으니 바로 ‘식량안보’다. 태국·우크라이나·러시아·아르헨티나 등 주요 식량작물 생산국들이 수출제한 조치를 시작하면서, 이 같은 상황이 식량자급률이 높지 않은 우리나라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식량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바로 최근 30년 간 쌀의 소비량을 조금씩 대체한 밀과 육류의 소비량을 자급률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의 경우 밀산업 육성법까지 제정해 국산밀 생산 확대를 꾀했지만 여전히 자급률은 1%를 겨우 웃돌고 있다. 육류의 자급률은 아직 62%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미 체결한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의해 미국산 소 등 주요 수입 육류에 대한 관세 철폐가 오는 2020년대 중반 예정돼 있어 앞날이 밝지 못하다.

우리 국민의 쌀 소비량은 식습관의 변화로 해가 갈수록 줄어왔다. 지난 1999년 96.9kg을 기록했던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18년에는 61.4kg으로 내려앉았다. 그만큼의 쌀 소비를 대체한 것이 바로 3대 육류(돼지·닭·쇠고기)와 밀이다. 지난 1999년에는 우리 국민 한 사람이 30.6kg의 고기(3대 육류 기준)를 먹었지만, 20년이 흐른 2018년에는 53.9kg로 소비량이 60% 넘게 증가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오는 2029년에는 60kg에 달할 전망이다. 곡물 집단에선 밀의 소비량이 2018년 기준 1인당 32.2kg까지 상승해 명실상부한 제2의 주식이 됐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는데, 육류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가축 사육 규모는 대폭 확대됐지만 이들을 먹이는 사료의 국산화율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지난 2018년 우리나라에 공급된 곡물의 총합은 2,364만3,000톤이었는데, 이 중 무려 45%에 달하는 1,069만4,000톤이 옥수수였다. 이 막대한 양의 수요는 대부분 축산업에서 나온다. 이 해 수요의 77%가 사료용으로 쓰인 옥수수의 자급률은 겨우 3.3% 수준으로, 마찬가지로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다시피 하는 콩과 밀 역시 옥수수만큼은 아니지만 사료용도의 비중이 각각 약 50%, 70% 수준으로 적지 않다. 식량자급률에 비해 곡물자급률이 턱없이 낮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식량작물 총 수입량이 국내 생산량의 4배에 육박하는 반면 이들 수입 곡물의 국내 재고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 예로 같은 해 옥수수의 이월재고는 63만5,000톤에 불과해 전체 공급량의 5% 수준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쌀의 재고량은 188만8,000톤으로, 재고만으로도 식용 쌀 1년 소비량(약 211만톤)의 상당부분을 소화 가능한 수준이다. 즉 해외발 식량 파동이 일어난다면 필연적으로 가축 사료용으로 쓰일 곡물 수급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이는 축산 분야 생산성 하락을 초래해 쉽게 공급 부족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대두를 수입해 돼지를 먹이는 중국은 이미 콩 가격 상승으로 인한 돼지고기 값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쌀은 100%에 가까운 자급률을 자랑하고 재배의향도 높아 늘 과잉생산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만일 위기 상황이 발생해 식탁의 다양성이 사라질 경우를 가정하면 쌀의 생산량은 그렇게 충분한 것만도 아니다. 현재 국내산 쌀의 생산량은 지속적인 농지 감소와 재배면적 조절 등으로 400만톤 선이 깨졌다. 만일 사료용 곡물과 식용 밀 등의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20년 전 수준으로 쌀 소비량이 회복되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 농업이 주식을 쌀로 먹일 수 있는 국민은 4,000만 명에 불과하다.

무역을 통한 식량 수급이 식량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는 비판은 그간 농민들뿐만 아니라 관련 학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 등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 12월 세계식량안보지수를 기초로 식량자급률이 식량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내고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식량위기와 같은 위험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한국과 같이 식량자급률이 낮은 국가의 경우 이러한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라며 “식량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내 생산기반 유지를 위한 식량자급률 법제화 등의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국내생산을 확대하는 정책과 함께 국제시장에서의 곡물 조달 능력 제고, 수입선 다변화, 식량 조기경보시스템 구축 및 운영 등의 다양한 정책조합들이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