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지금은 마을에서 배우는 길을 찾아야 한다

  • 입력 2020.04.12 18:00
  • 기자명 차재숙(충북 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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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숙(충북 영동)
차재숙(충북 영동)

저는 영동군 학산면에서 축산과 농사를 지으며 오후에는 6년째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농사꾼입니다. 7년 전 어느 날 할 일 없이 면을 빙빙 돌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농민들은 소외됐다고 어디 가서도 큰소리라도 치지만 아이들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돌봄을 시작했습니다.

학산면 청소년공부방은 ‘지역아이들은 지역공동체가 돌본다’란 목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공부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복지관이 폐쇄돼서 언제 아이들과 만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엄마들과 전화통화를 하는데 요즘은 더욱 바쁜 농사철이라 아이들 걱정에 많이들 힘들어 합니다.

특히 엄마들은 교육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 개학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얘기합니다. 1년 농사 중 가장 바쁜 4월이고 아이들 식사 챙기기도 힘든데 온라인 강의까지 돌봐야 한다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생들도 온라인강의 만족도가 6.8% 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심각한 질적 수준을 비판하면서 등록금 환불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시작했습니다.

하물며 초등학생들은 집중 자체가 어려워 누구도 온라인 개학에 대한 기대감은 없는 듯합니다. 교육이 교사와 학생, 그리고 친구들간의 인간관계에 대한 안정감을 바탕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아직도 교육부는 지식전달과 수업일수가 가장 중요한 사안인 것으로 여기며 시대에 역행하는 탁상공론만 하고 있는 듯합니다.

문득 6년 전 처음 공부방을 시작할 때가 생각납니다. 농사만 짓던 농민들이 아이들을 돌보자고 의기투합했지만 뭘 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학부모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학교수업을 도와 달라’는 의견과 ‘바빠서 아이들과 다닐 수가 없으니 박물관이나 도시체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후 지역에서 영어, 수학 봉사자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 충북도 사업으로 농촌아이들을 위한 역사체험프로그램이 있어 박물관과 도시를 다니게 됐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반응이 전혀 달랐습니다.

대부분 수업을 지루해 했고 체험학습은 장시간 여행에 힘들어하며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뭘 하고 싶니?”

“선생님 그냥 놀아요.” 그래서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친구와 친구, 선배와 후배,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가 안정화됐고 다른 수업의 집중력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아이들은 관계가 좋아지자 친구 동네나 선생님 동네를 놀러가고 싶다고 졸랐습니다. 몇 시간씩 타고 나가는 체험을 그만두고 우리면 마을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결과는 너무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네 동네를 나들이하며 마을의 작은 꽃, 오래된 나무도 신기해했고 지역에 애착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마을나들이를 갈 때마다 온 동네가 들썩일 정도로 신나게 떠들고 웃으며 놀자 지역 어른들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볼 게 있다고 시골 동네에 오냐?”던 분들이 좋은 일한다며 격려해 주시고 아이들이 마을에 가면 마을이야기도 해주시고 음료수나 과일도 주셨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지금 농촌의 아이들은 마을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른들은 일을 해야 하기에 매여 있지만 아이들은 자발적인 상황이 아니라 훨씬 불안하고 답답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휴대폰에 의지하고 온라인강의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배움은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경험이 필요할 듯합니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밭에 나가 농사에 대해 알려주고 교사는 마을로 들어와서 아이들이 살고 있는 환경을 살피고 마을나들이를 하며 농사일도 소개 받고, 마을 어른들을 만나서 아이들도 마을 이야기도 들으며 함께 ‘마을’을 배워 간다면 이것이야말로 협력 학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쌀 한 톨에 우주가 있고 한 사람에게 인류의 역사가 있고 한 마을에는 온 세상이 있습니다.

미래 세대에게 어떤 전염병이 생겨도 마을에서 안전하고 즐겁게 이겨낼 수 있도록 어른들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은 믿음과 안정감으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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