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지금 당장

  • 입력 2020.04.12 18:0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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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코로나19로 일상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일단 아이들이 늘 집에 있고, 집에 마련해 둔 식량이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있으며 애들은 낮에 일 나간 엄마 대신 먹기 위해 할 수 있는 음식 조리의 가지 수를 늘려나가고 있다.

미세먼지가 덜 한 것 같은 올해 유독 맑은 날씨와 피어난 꽃들을 보자니, 사람세상 말고는 자연은 평온한 듯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기후이다. 예전 같으면 3월 중하순 진달래가 먼저 피고, 벚꽃이 피고 그렇게 봄꽃이 이어졌는데, 올해는 벚꽃과 진달래가 같이 피고 지고 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냉해가 왔다. 올 겨울 어느 해보다 따뜻했고, 3월도 그러했다. 4월 중순은 돼야 꽃 몽우리가 나와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사과꽃도 피어야 될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온난화의 유혹에 성급히 싹을 키우다 4월 어김없이 오는 영하의 날씨에 꽃과 씨방은 얼어붙고 상처를 입는다. 어제 밤이 그랬다. 오늘 낮 동안 냉해에 대한 여러 소리가 들린다.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그렇다보니 이제는 각오까지 돼 있어 놀라지도 않는 무덤덤한 심장이 돼버렸다. 그러나 저러나 대책은 없다. 지자체에서는 피해 신고를 하라는 문자를 보내지만 결국 꽃이 피어봐야 알 일이고 열매가 맺어야 정확한 피해정도를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느 포도 농가는 영하로 내려가던 어제 밤에 하필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포도 싹이 얼어버렸다고 한다. 하루 밤사이에 농사를 망친 것이다. 몇 년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대부분의 농가들은 또다시 걱정과 한숨으로 한해 농사를 시작하고 있다.

작년에 쌀농사도 흉작이어서 수확량이 줄었는데, 무슨 기준인지 몰라도 농협미곡처리장 수매가는 그 전해와 같았다. 쌀 농가들의 소출은 줄었는데, 가격은 그대로이니 당연히 농가수익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새해 설날을 앞두고는 갑자기 소비자 쌀 가격을 약속한 듯 모두 올리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쌀 수매가 끝난 시점에 판매가를 올리는 농협을 비롯한 유통업자들을 보자니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다.

농사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과 말을 하다보면 ‘투덜이 스머프’가 된 것처럼 비관적으로 바뀐다. 코로나19로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마스크가 모자랐을 때 어떤 상황이 됐는지, 그게 마스크가 아니라 식량이었다면 어땠을까. 벌써부터 여러 나라에서 식량수출을 중단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기후변화와 농가의 어려움으로 식량이 모자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코로나19로 우리는 보았다. 위기는 예고하지 않고 온다. 대비할 수 있을 때 식량곳간을 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 그냥 상품이 아닌 공동체의 생존이 달린 농업에 대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정책과 인식이 전환돼야 할 때이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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