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밤섬 배 목수① 한강 밤섬에 조선소가 있었다

  • 입력 2020.04.12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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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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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도로를 따라 서울 여의도 근처를 지나본 사람이면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사이에, 마치 두 개의 밤알 모양을 한 채 수풀로 덮여 있는 조그만 섬을 곁눈질로나마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심 속 새들의 천국이라 일컬어지는 밤섬이다.

서울시에 의해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 밤섬에는 천연기념물 황조롱이와 쇠부엉이를 비롯한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들고 붕어, 뱀장어, 쏘가리 등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서 도심 속의 생태공원으로 시민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밤섬이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440여 명이나 거주하던 취락지였다는 사실은, 인근에 살고 있는 시민들조차도 거의 알지 못한다.

1998년 10월 14일, 서울시와 마포구가 ‘시민의 날’을 기념하여 특별히 제작‧복원한 전통 어선 ‘한선’이, 향수어린 황포 돛을 달고 한강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배 한 쪽에서는 요란한 풍물놀이가 흥을 돋우고 있었지만, 이 날 특별 초대 손님으로 승선한 100여 명의 노인들 표정은, 이마에 패인 깊은 주름만큼이나 처연해 보였다. 이들이 바로 60년대 말까지 밤섬에 터전을 일구고 살던 실향민들이다. 배가 밤섬 인근에 이르자 노인들이 웅성거린다.

-저기, 저기께가 우리 집 있던 그 자리 아녀!

-무슨 소리 하고 있어. 자네 집하고 우리 집 있던 그 자리는 이미 떨려 나가고 없어.

-가만있어 봐. 저 쪽이 마포나루로 건너가던 그 나룻배 닿던 데가 맞는데?

-그래, 맞아. 연평도 조깃배들이 썰물이 져서 마포나루에 못 올라가면 밤섬 저기쯤에 줄줄이 늘어서 있지 않았어.

-자네하고 내가 대동청년단 시절 보초 서던 데도 아마 저어기 쯤 될 걸.

-이 친구가 나이 들더니 망령이 들었나. 그 때 보초 서던 데는 여의도 개발하면서 벌써 잘려 나가버렸다구. 지금 우리가 배 타고 있는 이 물 속 어디쯤 될 거야 아마.

-어이, 이(李) 목수! 아니, 우리 밤섬의 토백이 목수가 어째 한 마디도 없나. 우리가 늘그막에 황포돛배 타고 고향 밤섬 언저리래도 다시 와볼 수 있는 것이 다 이 목수 자네 덕인데.

-이 목수 자네가 처음 배 짓는 일 배우던 그 조선소 말이야. 이름이 율도조선소였지 아마.

-아이고, 다 옛날 얘기지 뭐.

노인들 사이에서 ‘이 목수’라고 불리던 그 사람이 바로 1920년생의 이봉수 할아버지였다. 내가 그를 만났던 때가 1998년이었으니 그 때 그는 이미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무릎 관절이 말썽을 일으켜 걸음걸이가 불편하고, 치아도 별반 남아 있는 게 없다 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시의 특별 부탁을 받고서, 마지막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전통 어선인 한선을 직접 복원하여 한강물에 띄우고야 만, 집념과 전설의 배 목수다.

옛 시절 한강의 밤섬에는 각종 선박을 건조하던 조선소가 있었고, 소싯적 이봉수는 그 곳에서 배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했다.

이제부터 왕년의 밤섬 주민 이봉수가 배 목수로 살아온 60년 세월을 함께 더듬어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궁금한 얘기가 어찌 배 만들던 일 뿐이겠는가. 강원도 정선의 떼꾼들이 한강 줄기를 따라 아라리 곡조에 맞춰 뗏목을 저어 내려오고, 연평도 조기잡이배가 만선의 깃발을 나부끼며 무시로 드나들던, 그 시절 마포나루의 풍경도 함께 그려볼 것이다. 물론 새우젓 배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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