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조사 기다리다 다 죽는다 … 마늘 산지는 ‘아우성’

심상찮은 마늘 작황에 전국 산지마다 ‘술렁’
4월 중순 이전 조기대책 없인 폭락 불가피

  • 입력 2020.04.10 09:09
  • 수정 2020.04.13 10:0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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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이재욱 농식품부 차관은 지난 7일 전남 무안 양파·마늘 산지를 방문해 작황을 점검했다. 이 차관은 이 자리에서 “마늘 작황호조로 생산과잉이 예상된다”며 이달 말 정부수매·수출 등 마늘 2차 수급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날 전국마늘생산자협회(회장 김창수)는 전국 21개 시·군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미 생산량 급증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4월 중순으로 시기를 앞당겨 대책 효율을 담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갑자기 불거진 대립이 아니다. 이미 1차 대책 직후인 지난달 초부터 마늘협회는 ‘4월 중순 이전 2차대책’을 요구했고, 농식품부는 향후 작황을 장담할 수 없다며 통계조사 발표 이후인 ‘4월말~5월’을 내세웠다. 농민들과 농식품부가 느끼는 마늘 수급 위기에 온도차가 있는 것이다.


“역대급 재난 없는 한 공급과잉”

수확이 1~2개월이나 남은 시기지만 현재 마늘 산지 분위기는 그야말로 울상이다. 마늘농가 둘 이상이 모이면 “마늘 작황이 심상찮다”는 화제가 공식처럼 등장하고 있다. 지역을 불문하고 생육속도가 평년보다 7~10일씩이나 앞당겨져 있다.

남도종 마늘의 경우 일부 밭에선 이달 초부터 벌써 마늘종이 올라와 있다. 굵직해진 줄기와 떡 벌어진 잎 모두 예년 4월 하순 작황에 버금간다. 작황이 갑자기 무너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경남 남해 농민 서석주씨는 “봄 날씨가 가물다 하더라도 최근엔 농가마다 가뭄 대비도 잘 될뿐더러, 마늘은 시기상 영향을 크게 받지도 않을 것”이라며 기후변수 가능성을 일축했다.

대서종과 한지형도 다르지 않다. 대규모 재배가 많은 경남 창녕의 들녘은 한 눈에 보기에도 성성한 마늘로 가득하며, 중부지역의 한지형은 생육이 늦는 품종인 만큼 타 품종에 비해 작지만 오히려 예년대비 성장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창녕 농민 설정철씨는 “지금껏 이렇게 따뜻한 겨울이 없었다. 작년에도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올해는 도랑에 물이 한 번도 얼지 않았을 정도다. 잠깐 무름병이 있었지만 방제도 잘 됐다”고 말했다.

따뜻했던 겨울날씨에 마늘 작황이 호조를 보이자 농민들이 걱정에 휩싸였다. 사진은 마늘종이 길게 올라온 지난 6일 경남 남해군 남면의 남도종 마늘.
따뜻했던 겨울날씨에 마늘 작황이 호조를 보이자 농민들이 걱정에 휩싸였다. 사진은 마늘종이 길게 올라온 지난 6일 경남 남해군 남면의 남도종 마늘.
지난 6일 경남 남해군 남면의 남도종 마늘.
지난 6일 경남 창녕군 대합면의 대서종 마늘.
지난 7일 경북 의성군 가음면의 한지형 마늘. 한승호 기자
지난 7일 경북 의성군 가음면의 한지형 마늘. 한승호 기자

전체적으로 작황이 좋았던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좋다는 평이 우세한 가운데, 현재 재배면적에 단순히 지난해 생산단수만 대입해 보더라도 생산량은 평년대비 13%나 늘어난다. 이태문 마늘협회 정책위원장은 “한 달 이상 가뭄이 오거나 보름 이상 장마가 오는 등 역대급 기상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정도 생산량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농민들만의 우려가 아니다. 주산지 농협 조합장들도 마늘협회의 상황인식과 대정부 요구안에 “100% 공감”의사를 표하고 있다. 특히 작황 및 가격전망에 가장 민감한 산지수집상들이 아직까지 산지에 발길을 끊고 있다는 것이 가장 생생한 위기의 증거다.

작황과 더불어 재고량도 문제다. 현재 정부가 집계한 작년산 재고마늘은 4만3,600톤이다. 이 중 정부 보유량 1만6,400톤에 미방출 결정이 내려졌지만 확실한 폐기 방침이 없어 시장에 미치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민간 보유량 2만7,200톤은 비록 예년과 비슷한 양이라지만 출하 상황이 신통치 않다. 지역농협들이 헐값에라도 재고를 조기 소진하려 애쓰고 있음에도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좀처럼 판매가 되지 않는 실정이다.

마늘협회는 이번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으로 농식품부와 더불어 각 지자체에도 자체 면적조절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당사자인 농민들이 가격폭락의 위협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늘 공급과잉이 어느 때보다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농식품부의 소극적인 대처가 농민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왜 ‘4월 중순 이전’인가

농민들이 ‘4월 중순 이전’ 대책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가장 큰 이유는 남도종 마늘 때문이다. 5월부터 제주·전남·경남 순으로 수확하는 남도종은 최소한 4월 중순에 대책을 발표하고 4월 말까지 현장 시행 준비를 완료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4월 말에 대책을 발표해선 포전거래 등 산지가격 하락의 피해가 농민들에게 넘어오는 것을 막기 어렵다.

농식품부가 기다리는 통계청 마늘 재배면적 조사는 매년 4월 말경 발표된다. 올해부터 시행하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작황 실측조사도 마찬가지다. 즉, 수치화된 확실한 근거를 기다렸다가 대책을 세우자면 남도종은 언제나 정책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실제로 제주 마늘농가들은 “지금껏 한 번도 정책의 보호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호소한다. 심지어 폐기·수매대책 시의 단가마저 생산비가 훨씬 낮은 대서종을 기준으로 일괄 책정돼 남도종 농가가 큰 피해를 보기 일쑤다.

마늘 폭락 위기에 수확이 빠른 남도종 마늘이 가장 다급해졌다. 남도종 마늘 주산지인 경남 남해군 농민들이 지난 6일 남해군청 앞에서 지자체 차원의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군수 면담을 진행했다.
마늘 폭락 위기에 수확이 빠른 남도종 마늘이 가장 다급해졌다. 남도종 마늘 주산지인 경남 남해군 농민들이 지난 6일 남해군청 앞에서 지자체 차원의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군수 면담을 진행했다.

하지만 남도종은 결코 소홀히 대해도 될 만한 품종이 아니다. 우선 전국에서 가장 먼저 출하되는 햇마늘로서 향후 대서종·한지형 등 전체 마늘 가격의 가늠자가 되는 품종이다. 일단 남도종 가격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대서종·한지형 가격도 도미노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특히 올해는 태풍·병해를 겪었던 남부지역보다 창녕 이북의 작황이 더 좋아 그 양상이 더욱 증폭될 수 있다.

다른 측면으론 수급조절 효과를 생각할 수 있다. 어느새 ‘대세’로 자리잡은 대서종 마늘의 생산단수는 평당 7~8kg이지만 남도종은 4kg, 한지형은 3kg 미만이다. 대체작목조차 마땅치 않아 마늘 재배면적 자체가 포화상태인 상황에서, 남도종·한지형 품종분산은 수급안정에 일정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남도종 피해가 거듭된다면 그나마 정책의 울타리 안에 있는 대서종으로의 품종집중이 한층 심화될 소지가 있고, 수급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비록 정책 결정을 위한 수치화된 근거는 없지만, 개연성 있는 정황근거(작황호조)와 시급성에 대한 명분(남도종 보호)이 있는 상황이다. 또한 남도종 문제를 떠나 4월 중순 이전의 산지폐기는 4월 말 이후의 수매대책보다 예산 대비 성과 측면에서 좀더 효율적이다. 농민들은 폭락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농식품부가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을 바라고 있다.

김창수 마늘협회장은 “4월 말에 수매대책이 나온다면 과연 얼마나 빨리 물량·가격과 일정이 발표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또 완벽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지난해와 똑같은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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