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병든 가지를 잘라내며
[농민칼럼] 병든 가지를 잘라내며
  • 김현희(경북 봉화)
  • 승인 2020.04.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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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경북 봉화)
김현희(경북 봉화)

봄이 오면 잦아들까 했던 코로나는 꽃이 피고 새들은 울어도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해마다 농사의 시작을 알리며 서로의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영농기원제나 대보름 윷놀이는 물론 교육이나 소소한 모임조차 모두 취소 됐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봉화 지역은 요양원에서 집단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미 치매나 기저질환이 심각한 노령자들이 많다보니 사망자도 발생하고, 종사자들도 한 달 넘게 격리생활을 하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농촌 특성상 일부러 사람을 모으지 않는 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쉽게 이뤄지지만 그렇잖아도 조용한 마을이 더 적막해졌다. 산골에 뚝 떨어져 사는 우리는 자동으로 격리가 되니 밭과 과원을 오가며 풍문처럼 들리는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봄이 채 오기도 전에 파와 마늘은 가격파동으로 갈아엎기가 시작됐고, 농번기가 다가오자 외국인노동자에 의존하던 농업 인력 수급에도 차질이 있을 것 같아 다들 걱정이다. 코로나로 인해 중국의 농산물 수입이 줄어 국내농산물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하지만, 얼어붙은 외식업계의 소비위축은 농산물 소비 감소로 이어질 것이고, 예상과 달리 농산물 가격 폭락이라는 또 하나의 재난을 맞이할까 벌써부터 두렵다.

늘 그렇듯이 위기와 재난은 우리 삶의 근본을 들여다보게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무심하게 잊고 있었던 우리 주변의 삶도 보인다. 모든 재난의 어려움은 똑같이 찾아오지만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온다. 재난에 제일 먼저 노출되고 제일 많은 피해를 받는다. 요양병원과 정신병동에 격리돼 있는 이들에게 감염병은 죽음의 위협이 되고,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취약계층에게는 병에 대한 불안보다 더 큰 생존의 위협이 몰려오고 있다. 아이들 양육에도 비상등이 켜지고, 학교는 문을 닫고,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잃었다.

일상적으로 누리고 해오던 일들이 단절되는 경험들이 개개인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정부에서 재난지원금 지원을 선포했다. 소수에게서만 논의되던 기본소득이라는 의제가 재난지역, 재난지원금, 재해구제 등에서 출발해 재난기본소득이란 말로 공론의 장에 등장했다.

재난지원금이 전체 국민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면 좋은데 소득하위 70%에게만 지급된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1보 전진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볼 수 있다. 정치가 얼마나 중요하고, 우리 삶과 직결돼 있음을 새삼 느끼고 정치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선거가 코앞이다. 우리 지역의 후보들은 주요 당에서 무소속까지 다 변호사 출신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엄청나게 다양한데 후보들의 직업도 학벌도 참 비슷하다. 내거는 공약들도 한결같이 고속도로를 놓는다, 개발을 한다, 유치를 한다, 발전시키겠다…라는 경제공약만 애드벌룬처럼 공허하게 맴돈다. 심지어 모 당 후보는 원자력발전소까지 재개를 한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농민·장애인·노인·빈곤층·청년 그리고 수많은 소수자와 약자들이 우리 사회에 있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정치 이슈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선거법 개편으로 소수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권리가 사표가 되지 않으리라 기대했지만 이 또한 빛 좋은 개살구에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찌됐든 선거일은 곧 다가오고 나는 주권자로서의 내 권리를 행사할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지지하는 농민후보들이 총선을 위해 달리고 있다. 이번 4.15 총선을 통해 농업의 가치를 사회와 함께 공유하기 위해, 지역 소멸에 대응해 균형발전을 목표로 농민의 정치를 대변해 주기 위해, 식량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농민헌법 제정과 농지개혁을 위해 농민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물론 씨앗이 흙에서 뿌리 내리듯 느리고 더디겠지만,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전 지구적 위기 안에서 힘들고 외로운 삶을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희망의 정치판이 되길 기대해본다.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가는 봄날,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요즘, 산골의 비탈진 밭에서 전지가위를 들고 병든 가지를 잘라내며 요즘 내가 주로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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