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국회의원이 간절하다면

  • 입력 2020.04.05 18:00
  • 수정 2020.04.05 19:58
  • 기자명 홍기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엔 화석정이란 정자가 있다. 화석정엔 임진왜란 당시 이항복이 이 정자에 불을 질러 선조의 피난길을 밝혔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설화에 따르면 10만 양병설을 주창했던 율곡 이이는 늘 화석정의 기둥과 서까래에 들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먹여 두었다고 한다. 한밤중에 임진강에 다다른 선조가 강을 건너지 못하자 이항복이 정자에 불을 질러 주위를 밝힌 덕분에 무사히 도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촛불항쟁으로 박근혜정권이 물러났지만 농업·농촌은 소외받는 처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며 농정개혁의 희망이 잠시 비추는가 싶었지만 이내 사그라들고 말았다. 행정부가 바로 국정을 수행하도록 견인해야 할 입법부인 국회는 적폐잔존세력과 보수당의 싸움통에 휩쓸려 농민을 까맣게 잊었다.

농민 국회의원은 존재만으로도 국민들에게 농업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금, 국회에서 농업·농촌을 지킬 농민 후보들이 당선권에 보이질 않는다.

현재 가장 당선권에 가까운 농민 후보는 김영호 민중당 비례대표 후보다. 비례순번 2번에 배정돼 민중당이 정당득표율 3% 이상을 거두면 당선이 확실시된다. 민중당은 원내의석 1석의 소수정당으로 이번 총선 비례투표에서 8번에 배정됐다. 3% 득표율을 올리기가 만만찮은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우리나라 18세 이상 인구수는 4,398만명이다. 2016년 20대 총선 투표율은 58%였다. 이번 총선이 58% 투표율을 기록한다고 가정하면 총 투표자 수는 2,551만명이 된다. 이 중 3% 득표율을 달성하려면 77만명 이상이 투표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농가인구는 231만명이지만 실제 농민의 수는 이보다 더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민들의 힘만으로는 소수정당인 민중당의 지지율을 2배 이상 높이는 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비례대표 후보가 출마한 35개 정당을 다 둘러봐도 사실상 민중당만 농민 후보를 당선권에 배치시켰다. 농민 국회의원이 간절하다면 선택지가 하나뿐인 셈이다.

박형 전 예산군농민회장은 “국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돼야 하는데 지역구 선거만 하면 정치인, 법조인만 당선된다. 그래서 비례대표제가 있는건데 비례 후보들 중에서도 농민을 찾기 어렵더라”라며 “김영호 민중당 후보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조직적 결정으로 출마했으며 비례전략명부로 2번에 배치돼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예산지역은 김 후보의 고향이다보니 김 후보를 알리기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전국적으로는 참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300명 중에 단 한 명의 농민 국회의원을 갖는 게 무리한 요구인걸까. 농민은 이대로 모든 기성정당의 외면 속에 정치에서 퇴장해야 하는걸까. <한국농정>은 화석정을 태운 이항복의 심정으로 이번 커버스토리 기획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농민대표 국회가자!’ 오는 15일 21대 총선을 맞이하는 농민들의 심정은 바로 이 한마디에 담겨 있다. 지난달 30일 경북 영천의 한 마늘밭 방제 현장을 찾은 김영호 민중당 비례대표 후보가 한 농민으로부터 산지폐기할 수밖에 없는 마늘농가의 현실에 귀 기울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민대표 국회가자!’ 오는 15일 21대 총선을 맞이하는 농민들의 심정은 바로 이 한마디에 담겨 있다. 지난달 30일 경북 영천의 한 마늘밭 방제 현장을 찾은 김영호 민중당 비례대표 후보가 한 농민으로부터 산지폐기할 수밖에 없는 마늘농가의 현실에 귀 기울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