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중동 바람⑧ ‘가화만사성’이라 하였다

  • 입력 2020.04.05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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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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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왔다.

고국의 가족으로부터 두 달 남짓 동안이나 소식이 끊겨서 어깨가 바닥까지 처져 지내던 사우디의 건설 노동자 박기출 씨에게, 드디어 고향에서 편지가 왔다. 그에게 고민 상담을 해주었던 공사현장의 김 주임도, 박 씨에게 편지를 전하면서 덩달아 기뻐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김 주임이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박 씨는 거의 혼이 나가 있었다.

-기출씨, 왜 이래? 참, 아까 고향에서 편지 왔었잖아. 부인한테서 온 것 아녔어?

-이 편지…마누라가 아니라…동네 사시는 당숙님께서…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박기출 씨는 울음을 삼키느라 말을 잇지 못 했다. 김 주임이 편지를 건네받았다. 펼쳐보니, 박 씨의 당숙은 인사말이고 뭣이고를 뚝 잘라 ‘却說(각설)허고…’, 본론부터 적어놓았다.

…아물해도 足下가 일단 귀국을 해서 가정부텀 건사를 해야 씨것네. 족하네 안식구가 요세 品行이 안 조와서 사람들이 모다 손꾸락질을 해싸니께…

 

박기출 씨의 부인이 바람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당숙은 결정적으로, 박 씨의 부인이 읍내에서 젊은 남자와 ‘오도바이’를 함께 타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당숙모의 목격담까지 근거로 곁들이고 있었다. 당시 현장의 주임으로서 박 씨의 상담을 맡았던 김윤억 씨의 얘기다.

“대개 결혼한 젊은 남자가 사우디에 돈 벌러 가고나면,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이 그 부인을 신경 써서 지켜보거든요. 건실하게 생활을 하는지 혹 딴 짓이라도 하는지…. 아, 그래서 박기출이라는 그 사람 어떻게 됐냐고요? 그건 물어볼 필요도 없어요. 회사에서 즉각 귀국조치를 하지요. 그 상태로 현장에 남아 있은들 일이 손에 잡히겠어요? 그런 경우 왕복 항공료를 본인이 다 부담해야 돼요.”

1980년대 초에 한국과 사우디의 편도 항공료는 한화로 60만원이었다, 처음 출국할 때의 항공료는 회사에서 부담을 한다. 개인적인 문제가 생겨서 출국한지 6개월 이내에 귀국을 할 때에는, 출국 때의 항공료까지 물어내야 했다는 것이다. 김윤억 씨는 굳이 이렇게 덧붙인다.

“이건 확실히 해둬야 해요. 남편을 사우디에 보낸 대부분의 부인들은 송금해온 돈을 알뜰하게 관리하면서 성실하게 자녀 교육 시키고…그러니까, 물의를 일으킨 그런 사례는 영점 영영영영…퍼센트도 안 된다니까요. 정말이에요.”

사우디 파견 노동자는 대개 1년 계약을 하고 떠났지만 연장이 가능했다. 하지만 누구나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일정수준의 근무평점을 받아야 가능했다. 연장 심사를 할 때 ‘가정환경이 안정적인지’의 여부를 비중 있게 평가했다. 사우디에 파견됐던 노동자들이 대체로 30대의 젊은 기혼자들이었고, 회사 관계자들이 배달해주는 편지 이외에는 다른 소통수단이 없어서, 누구나 조금씩은 ‘의처증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1980년에 회사 직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건너갔던 김윤억 씨는 만 10년만인 90년도에야 임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이미 중동건설 붐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때였다.

“처음에 두 살배기 딸을 두고 출국했었지요. 도중에 휴가를 한 번 다녀갔는데도, 귀국하던 날 김포공항에 나온 딸내미가…얼굴이 벼루처럼 시꺼먼 사람이 나타나서 아빠라고 하니까, 무섭다며 도망을 치더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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