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신천지의 꿈, 농부의 꿈

  • 입력 2020.03.29 18:00
  • 기자명 전용중(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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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중(경기 여주)
전용중(경기 여주)

요즘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에 대한 관심들이 많습니다. 밭두렁 가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일 때도 신천지에 대한 비판과 분노가 주로 이야기꺼리가 됩니다. 비판과 분노의 방향은 주로 교리의 이단성과 포교의 지독함에 쏠립니다. 애초부터 흙으로 사람을 빚었다는 걸 믿지 않는 나로서는 어느 종파가 더 이단인지도 모르겠고, 포교의 방식은 오히려 신념에 대한 성실함(?)으로 비춰지기도 해서 농민회 활동 게을리하는 나를 돌아보며 쓴웃음 짓게 합니다.

신천지를 보면서 ‘이건 너무하네’ 하는 부분은 ‘천국 갈 수 있는 14만4,000명’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숫자가 정해져 있고 이미 30만명이 넘는 신도들이 같은 교회 내에서 ‘신앙경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더 믿고 덜 믿는지, 누가 더 교리를 많이 알고 적게 아는지, 누가 교회를 위해 더 희생을 하는지에 따른 상대평가로 천국을 차등으로 누리는 것도 아니고 절대평가에 의해 오로지 14만4,000명만 천국에 갈 수 있다니. 그런데도 저렇게 열심히? 그야말로 ‘나만 천국에 갈 수 있다면’으로 뭉친 교인들이라니.

형태와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 사회도 개인주의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IMF를 지나면서 소위 신자유주의의 파도 앞에서 개인의 패배로 무너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과도한 실업, 비정규직의 증가, 경제적 양극화, 기회균등의 상실은 일상적으로 우리를 ‘개인’으로 몰아 부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 아니면 돼’가 생존 방식이 돼 버렸습니다. 하루에도 몇 명씩 컨베이어 벨트에서 죽어나가는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나의 자식이 아니므로 못 본 척 합니다. 그렇게 개인화된 국민들 위에서, 돈이 있는 자는 갑질과 착취로, 권력이 있는 자는 불법과 담합으로 자신의 부와 권력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한 개인들의 피나는 노력은 그들을 위한 좋은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그 끄트머리에 땅도 잃고, 늙어버린 우리 농민들이 수입개방과 저곡가 정책 속에 일개미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나의 인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중들은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스팔트에 쓰러진 늙은 농민의 죽음에 기꺼이 함께 싸워주기도 하고, 생죽음으로 떠나간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 내 새끼인양 함께 울어주기도 하고, 부패한 권력을 오로지 국민의 이름으로 몰아내는 기적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민중이 함께 싸울 때 그들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니었으며 그 자리가 곧 천국인 듯했습니다. 그런 절망과 희망의 교차는 우리에게 우리가 함께 하면 함께 행복한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줍니다. 14만4,000명만 갈 수 있는 천국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희망임을 말해 줍니다.

우리 농민들 앞에는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분단과 외세에 의한 농업구조의 왜곡, 적폐관료들에 의한 농업 포기, 경자유전의 파괴, 대농과 소농의 분리 등 얼키고 꼬인 농업의 문제는 개인의 노력이나 농민만의 투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외세를 극복하고, 분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적으로 보장받고, 민족의 건강한 먹거리를 책임지는 보람찬 노동으로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공동체가 합의하고 함께 나설 때만 실현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4월에 있을 총선농사는 그 원대한 꿈을 위한 큰 걸음을 떼는 일입니다. 농민의 직접정치. 농민을 넘어 우리사회 공동체를 위한 소중한 꿈이 되리라 믿습니다.

모두 함께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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