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담합’ 국별쿼터 TRQ쌀, 미국산부터 반입

aT, 지난 2월 미국산 가공용쌀 2만2,000톤 낙찰
3월 미국·태국산 7만3천여톤 입찰 … 유찰된 중국산도 재공고
5% 관세 TRQ쌀 40만8,700톤 중 5개국 쿼터량 95% 차지

  • 입력 2020.03.29 18:00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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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쌀 관세율이 513%로 확정된 가운데 저율할당관세(TRQ, 5%) 쌀의 반입이 지난 2월 확정됐다. 첫 출발은 미국산 가공용쌀 2만2,000여톤이고, 중국산 가공용쌀 5만5,000여톤은 가격이 비싸 유찰됐다. 3월엔 2차로 미국·태국산 가공용쌀과 앞서 유찰된 중국산 가공용쌀 추가 공매 계획이 발표됐다. 쌀 공급과잉으로 농민들은 쌀 대신 타작목을 심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데 국별쿼터 특혜로 5개국의 수입쌀값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고질적인 국내 불법유통 문제까지, 주식이자 우리 농업의 근간인 쌀산업이 멍들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사장 이병호, aT)는 지난 1월 31일 올해 처음으로 TRQ쌀 구매입찰 공매(공공기관 주체로 실시하는 경매) 계획을 공지했다. 중국산 가공용쌀 5만5,556톤과 미국산 가공용쌀 2만2,222톤이다. 지난 2월 11일 aT 구매입찰 결과를 보면, 미국산만 톤당 868.64달러(한화 약 106만8,300원)에 낙찰됐다. 5월 31일까지 인천항에 도착하는 조건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513%의 쌀 관세율을 확정짓고 40만8,700톤의 저율할당관세(TRQ, 5%) 물량 중 중국·미국·태국·베트남·호주 5개국에 국별쿼터를 배분해 의무수입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미국산 가공용쌀 TRQ물량이 목포항에 도착해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513%의 쌀 관세율을 확정짓고 40만8,700톤의 저율할당관세(TRQ, 5%) 물량 중 중국·미국·태국·베트남·호주 5개국에 국별쿼터를 배분해 의무수입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미국산 가공용쌀 TRQ물량이 목포항에 도착해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지난 16일 TRQ쌀 구매입찰 2차 공고에는 미국산 가공용쌀 4만3,671톤과 태국산 가공용쌀 2만9,993톤, 18일에는 1차 때 유찰된 중국산 가공용쌀 2만톤 분만 재공고됐다.

우리 정부는 2015년부터 513%의 관세만 물면 누구나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전면개방 방침을 밝혔다. 관세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5개국과 5년간 협상을 한 끝에 지난해 말, 관세율을 관철시키면서 TRQ 40만8,700톤 중 38만8,700톤(95%)을 중국·미국·태국·베트남·호주 5개국에 국별쿼터로 배정해 특혜를 줬다. 올해부터 이들 5개국은 확보된 물량안에서 쌀을 수출하게 된 것이다.

국별쿼터 부활에 대해 가장 큰 우려는 ‘쌀값 배짱’ 문제다. 협정문에는 국별쿼터 물량이 3회 유찰되면 ‘글로벌쿼터’로 전환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가능성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aT의 한 관계자는 “국별쿼터는 일종의 담합이다. 물량을 보장하는 시장에서 얼마든지 가격 담합도 가능한 일 아닌가. 그리고 미국과 중국산 쌀을 3회씩이나 유찰시키고 글로벌쿼터로 돌리는 일이 실제 벌어지는 일도 불가하다고 본다. 그 전에 상대국과 조율해 결론이 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2일 실시한 aT의 TRQ 쌀 입찰결과를 살펴보면 미국산 가공용쌀 가격 상승치가 두드러진다. 1만1,000톤이 낙찰됐는데 가격은 톤당 809.37달러(한화 약 99만8,000원)다. 지난 2월 낙찰가인 톤당 868.64달러는 지난해보다 59.27달러 더 비싸졌다. 지난해 10월 환율은 코로나19 사태로 불안정한 현재 환율(약 1,233.5원) 보다 더 낮았다(약 1163.4원)는 조건까지 더하면 낙찰가 상승률은 더 커진다. 종합적으로 올해 미국산 가공용쌀의 낙찰가는 지난해보다 높아졌다.

aT 미곡부 관계자는 “구매 시기, 국제 곡물가, 운송방법 등이 종합돼 TRQ 쌀 낙찰가가 결정되기 때문에 단순비교해서 싸다, 비싸다 말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올해 1차 입찰 때 중국산 가공용쌀 값이 높아 유찰됐다는 점은 인정했다.

가격문제 뿐만 아니라 수입쌀 부정유통 문제도 여전한 과제다. 지난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식품부 국정감사에서 ‘수입쌀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부정유통 증가’ 문제를 당시 민주평화당 소속 박주현 의원이 지적했다. 박 의원은 “수입쌀과 국내산 쌀을 혼합하거나 생산연도가 서로 다른 쌀을 혼합해 판매하는 것을 처벌하는 양곡관리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유통이 늘고 있다”면서 쌀 수입유통업체에 대한 계도 활동 강화, 건전한 쌀 유통시장 질서 확립 등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수입쌀 유통과 관련해 특별히 달라진 운영방안이나 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윤원습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올해 나라별로 물량이 정해졌을 뿐 지난해와 TRQ운영 자체가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국내 쌀 산업에 영향이 없도록 관리하는 것은 기본 원칙이고 수확기에 밥쌀 판매를 조절해 운영하는 것에 주의하고 있다”면서 “밥쌀용 쌀은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로 도입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40만8,700톤 TRQ 쌀 중 밥쌀용은 4만톤, 상·하반기로 나눠 수입됐다. 올해부터 확정된 TRQ쌀 국별쿼터 물량은 원산지별로 △중국 15만7,195톤 △미국 13만2,304톤 △베트남 5만5,112톤 △태국 2만8,494톤 △호주 1만5,595톤이 배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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