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도매인제, 숙제를 받다

강서시장 대금미지급 사태 발생
불법전대·송품장누락 방지 필요

  • 입력 2020.03.29 18:00
  • 수정 2020.03.30 09:1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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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강서시장의 한 시장도매인에서 출하자 대금미지급 논란이 불거졌다. 점포 불법전대와 탈법적 편법거래가 빚어낸 사태다. 경매제의 대안으로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준비 중인 가락시장에 큰 시사점을 안기고 있다.

최근 경북지역 영농조합법인 대표 강모씨는 강서시장 시장도매인 A농산의 직원 이모씨를 통해 사과를 출하하면서 2017~2018년 약 2년간 3억6,000만원의 출하대금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2004년 강서시장 개장 이래 시장도매인 대금미지급 사건이 터진 건 2009년 백과청과 부도사태에 이어 두 번째다.

사실 시장도매인의 정상적인 거래절차를 밟는다면 대금미지급은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시장도매인이 출하자로부터 받은 송품장은 전산등록됨과 동시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공사)에서 그 사본을 보관한다. 지난 2016년 대금정산조합이 만들어지고부터는 정산조합이 개별 시장도매인을 대신해 출하대금을 즉시 지급하고 있으며 설사 시장도매인 부도 사태가 나더라도 출하자 대금지급은 보장된다.

이 모든 안전장치를 깨부순 건 불법전대와 편법거래다. 전대는 도매시장 내에 점포를 임대한 중도매인이나 시장도매인 등이 사사로이 자릿세를 받고 별도의 영업자를 들이는 행위다. 이씨는 A농산의 전대상인(지난해 10월 퇴출)으로, A농산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강씨와의 거래를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송품장이 누락 혹은 미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초 문제를 감지한 A농산이 ‘눈에 보이는’ 미지급액을 모두 정산했지만 강씨에겐 ‘보이지 않는’ 미지급액이 남았던 것이다.

강서시장 시장도매인 대금미지급 사태가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준비 중인 가락시장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사진은 사건이 발생한 강서시장의 A농산.
강서시장 시장도매인 대금미지급 사태가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준비 중인 가락시장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사진은 사건이 발생한 강서시장의 A농산.

상황은 그야말로 진흙탕이다. 송품장 기록이 온전치 않으니 일단 미지급액이 얼마인지부터 정확하지 않다. 3억6,000만원은 강씨가 A농산에 보낸 내용증명에 기재된 액수며 이씨가 주장하는 미지급액은 4,000만~5,000만원 규모다. 무려 3억원 이상의 차이가 난다. 심지어 미지급액 중 이씨가 A농산 전대상인으로 있던 기간 동안의 액수가 얼마고 퇴출 이후의 액수가 얼마인지마저도 불분명하다.

강서시장 60개 시장도매인 조직인 한국시장도매인연합회(연합회)는 논란이 확산되자 대승적인 차원에서 미지급액 지급을 책임지기로 결정,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강씨와 이씨가 주장하는 액수에 차이가 큰 만큼, 이씨가 A농산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시장도매인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1차적으로 정확한 송품장 등록·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드시 전대상인이 아니라 정규 점포라 할지라도 송품장 누락 위험은 장담할 수 없다. 출하자는 출하물에 대해 빠짐없이 송품장을 작성하고 공사와 정산조합에 정상등록됐는지 확인해야 만약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공사와 연합회는 출하자의 확인을 돕기 위해 다음달 중으로 출하주에게 송품장 등록사실을 문자 발송하는 서비스를 개시할 방침이다.

이와 별개로 전대행위에 대해선 더욱 철저한 단속이 요구된다. 전대는 그 형태에 따라 유통비용을 증가시키거나 상인 간 형평성을 훼손하며, 이번 경우처럼 불법거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행정의 분발과 더불어, 단속을 용이케 하기 위한 시장도매인·중도매인 거래기록 공개의무 부과 등 법률 정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도매인제는 ‘기업 배불리기’로 대표되는 경매제 폐단을 극복할 중요한 대안의 하나로 거론돼왔다. 그동안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도입은커녕 개선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결국 실전에서 중요한 개선점이 확인된 셈이다.

뼈아픈 논란 속에서도 한 가지 긍정적인 사실은, 경매제의 폐단이 합법의 영역인 데 반해 이번에 드러난 시장도매인제의 폐단은 불법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경매제보다 훨씬 쉽게 그 폐단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당장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추진 중인 가락시장이 손길을 집중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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