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시장 유통체계 개선, 정부 의지에 달렸다

  • 입력 2020.03.29 18:00
  • 기자명 김윤두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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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두 건국대 교수
김윤두 건국대 교수

2019년 우리나라 농업총생산액은 50조4,280억원으로 추정되며, 농산물을 생산하는 재배업의 경우는 30조7,050억원으로 추정된다. 과거와 달리 농산물의 생산은 대부분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농산물 생산자 가격이 생산비를 보장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해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배추 가격이 전년대비 53.1%나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무와 양파 등 많은 채소 품목들의 가격도 연이어 폭락했다. 이로 인해 농업인과 산지유통인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즉, 농업인들은 농산물 가격이 불안정함에 따라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반면 소비자들은 농산물 가격이 항상 비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현재 농산물 유통체계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영도매시장, 농산물 유통의 중추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생산된 농산물은 54.3%가 농산물공영도매시장(도매시장)을 거쳐 소비자들에게 공급되고 있다. 즉, 도매시장은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매시장은 농산물 유통환경이 급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유통체계에 대한 개선과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여지가 크지 않아 보인다. 물론, ‘시설현대화사업’ 등을 통해 부분적인 개선을 시도하는 도매시장도 있으나 유통체계를 본질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미흡해 보인다.

농산물 유통체계 개선에 대한 필요성은 생산자와 소비자, 유통인, 정부 등 모든 주체가 공감하고 있으나 각 주체간 의견대립, 이해관계자간 갈등으로 인해 농산물 유통에 대한 전반적인 구조 개선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농산물 유통체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우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도매단계의 주요 유통경로인 도매시장 유통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도매시장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가락시장)의 개선이 우선적이며, 필수적이라고 판단된다. 가락시장은 전국 32개 농산물도매시장 거래물량 중 34.3%를 점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31개 도매시장 평균 거래물량 대비 16배 많은 농산물을 거래하고 있다. 즉, 가락시장은 압도적인 거래물량을 바탕으로 전국도매시장의 농산물 가격형성과 농산물 유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모여드는 곳, 서울 가락시장에서 경매를 수행하는 도매시장법인들이 대기업이나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허나 농업과의 연관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달 30일 서울 가락시장의 각 도매법인 경매장 앞이 싣고 온 농산물을 하역하려는 차량과 노동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하다.한승호 기자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농산물공영도매시장의 발전을 위해선 무엇보다 합리적인 유통체계 구축을 위한 농림축산식품부의 의지가 필요하다. 서울 가락시장의 각 도매법인 경매장 앞이 싣고 온 농산물을 하역하려는 차량과 노동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한승호 기자

이에 따라 도매시장과 관련된 정책 추진시 많은 정책들이 가락시장에 최초로 도입되고 검증된 후 이를 타 도매시장으로 확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가락시장 유통체계의 올바른 개선은 우리나라 전체 농산물 유통구조를 합리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시작이자 본질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국내 최대의 거래물량을 보이는 가락시장에서 무엇이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하는 과제인가?

‘수탁독점’과 ‘지정제’라는 진입장벽 특혜로 안정적 영업활동이 보장됨에 따라 독점적인 형태를 갖는 도매시장법인만의 도매시장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판단된다. 가락시장에서 산지로부터 출하된 농산물을 수탁하여 거래할 수 있는 유통주체는 일부 예외조건을 제외한다면 개설자로부터 지정을 받은 ‘도매시장법인’으로 제한돼 있다. 즉, 도매시장법인만이 농산물을 수집할 수 있는 주체라는 뜻이다.

이러한 도매시장법인의 매출발생 구조는 위탁수수료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타 도매시장에 비해 월등히 큰 거래규모를 갖는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은 경영 리스크도 크지 않아 매우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는 경영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굳이 치열하게 도매시장법인 간 경쟁을 할 필요성이 낮은 실정이다.

또한, 도매시장법인은 법률로 5~10년의 지정 유효기간을 보장받고 있으며, 심지어 1985년 가락시장 개장 이후 현재까지 도매시장법인이 재지정에서 탈락한 사례는 전무하다. 즉, 아주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한번 지정은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탁독점’과 ‘지정제’에 따른 도매시장 내 비경쟁구조로 인해 2018년 기준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 평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7.97%로 동일업종(도매 및 상품중개업)의 6.6배이며, 매출액 대비 당기순이익률은 9.03%로 동일업종의 4.32배로 나타났다. 이러한 높은 영업이익률과 당기순이익률은 도매시장법인의 기업가치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고 있다.

2019년 ‘동화청과’는 771억원에 매각돼 최근 10년간 매각대금이 491억원 증가했으며, 거래품목에 제한이 있어 8개 품목만을 취급하는 ‘대아청과’도 564억원에 매각됐다. 즉, 도매시장법인은 자체 토지, 건물 등의 자산이나 특정한 고도의 기술 등이 요구되지 않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위탁수수료로 인해 발생하는 안정적 수익이 도매시장법인의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된다.

가락시장 유통체계 개선 시급

대전광역시에서는 도매시장법인의 이러한 비경쟁적 구조를 개선하고자 2018년 지정 기간이 만료된 도매시장법인을 재지정함에 있어 공모제를 도입하고자 했으나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에서 운영규정(조례) 변경을 승인하지 않아 무산됐다. 일반적으로 독점적인 시장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등 중앙부처는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반면 대전광역시 사례를 봤을 때 농식품부는 이런 노력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바이다.

더불어 2012년 가락시장 내 유통주체간 경쟁체계 도입을 위한 시장도매인 도입에 필요한 업무규정 승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간 합의도출을 요구한 농식품부의 사례 또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자신들의 막대한 이익이 경쟁을 통해 사라질 수 있는 주체가 경쟁자의 도입에 합의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의 정책 추진 사례를 살펴보면 2019년 계란에 산란일자를 표시하는 ‘산란일자표시제’에 대해 많은 양계농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추진해 좋은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2012년 도매시장 거래방법에서 정가·수의매매의 일반화를 추진함에 있어 대표적인 생산자 단체 및 유통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고 농식품부는 정책을 추진했다. 사례와 같이 정부정책의 추진은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에 의해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와 같이 농식품부에서 개설자들의 개선의지를 제지할 수 있는 근거는 현행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있다. 현재 중앙도매시장 개설자들이 도매시장의 개혁을 통해 농산물 유통체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새롭고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자 운영규정 개정을 요구하더라도 농식품부에서 이를 반대한다면 한 발짝도 추진할 수 없는 실정이다. 즉, ‘농수산물 도매시장 개설·운영’은 지자체의 사무임에도 불구하고 도매시장 관리·감독의 근거가 되는 업무규정 변경의 승인권한을 농식품부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입법기관에서 법률로 정했으나 행정입법으로 무력화하는 형태는 현 정부의 지방분권 강화정책과도 대치되며, 중·장기적으로 도매시장이 다른 유통경로보다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퇴보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농식품부에서 경쟁촉진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2013년 농식품부 등 주요 부처에서 제시한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정책’에서 도매시장의 운영 패러다임 전환 정책에 있어 ‘규제완화를 통한 유통주체간 경쟁촉진’ 정책을 제시했다. 이 정책에서는 도매시장법인 및 중도매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대형유통업체 등 도매시장외 유통주체와의 경쟁을 촉진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경쟁대상을 도매시장법인과 대형유통업체로 설정한 농식품부는 경쟁대상에 대한 관점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된다.

최근 도매시장 개혁 및 경매제도를 돌아보는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농민·출하자들이 경매제가 지닌 폐단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며 시장도매인제 도입 등 또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농산물 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에서 과일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내 대표적인 농산물 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에서 과일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식품부, 도매시장 관리·감독 자율권 보장해야

앞으로 합리적인 농산물 유통체계 구축과 도매시장 발전을 위한 농식품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에 있어 농식품부는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필요한 정책 및 법률 등에 대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우선적으로 중앙도매시장 관리·감독 및 운영의 자율권 보장이 필요하다.

만약, 농식품부는 도매시장의 경쟁촉진을 통한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의지가 없다면 개별도매시장의 여건을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고 인지하는 개설자들이 자체적으로 도매시장 관리와 감독 역할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현재 농식품부의 권한인 도매시장법인에 대한 평가 권한은 개설자에게 이관하고 중앙도매시장의 업무규정 승인 권한을 축소함으로써 개설자의 자율적 권한을 확대하고 동시에 책임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또한, 농산물 유통구조의 효율성 및 유통비용을 절감하고, 도매시장 유통주체의 경쟁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개설자가 다양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농식품부만이 갖고 있는 행정입법 권한을 바탕으로 도매시장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책추진의 근거 및 법률이 갖고 있는 모호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할 때에는 선제적인 법률 개정을 통해 도매시장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식품부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에 보다 앞장서 나아가야 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 및 논의하는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 초기(2017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농안법령 체계개편 연구용역’을 통해 다양한 도매시장 제도개선 혁신방안을 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반영 및 관련 토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농식품부의 유통구조 개혁에 대한 의지의 부족을 반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농식품부는 변화로 인한 책임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속적인 의견수렴과 논의를 통해 가장 합리적인 농산물 유통 혁신방안을 마련함으로써 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농산물 유통구조를 확립하기 위한 태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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