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갈아엎는 농사 대신 수확하는 농사를

  • 입력 2020.03.22 18:00
  • 기자명 강선희(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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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희(경남 합천)
강선희(경남 합천)

따뜻한 겨울 동안 마늘과 풀은 너무나도 잘 자랐다. 풀농사만큼 곡식농사가 되면 풍년 아닌 해가 없을텐데… 마늘논 풀을 보며 항상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잘 자란 농작물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더 있다. ‘풍년이 들면 좋은가? 풍년 농사를 지은 농민은 행복한가?’

풍년가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금수강산에 풍년이 왔네. 지화자 좋다. 얼씨구나 좋구 좋다. 명년 춘삼월에 화전놀이 가세.’

이 노래대로라면 풍년은 분명히 좋고 농민은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 농사는 어떠한가? 작년에는 양파와 마늘이 따뜻한 겨울 덕분에 풍작이 됐다. 심지어 적정면적을 심었던 양파는 농민들이 농사를 너무나도 잘 지어서 적정양보다 많이 생산됐다.

지난해 양파·마늘 농가는 전국적인 생산자조직을 만들어 마늘·양파 가격폭락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다. 대책이 많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정부가 농민의 요구를 받아서 나온 정책이 사전산지폐기이다. 채소가격안정제 계약농가를 중심으로 사전산지폐기 신청을 받았고, 정책시행 시기가 늦어지면서 다 자란 마늘과 양파를 논밭에서 갈아엎게 됐다. 시기가 늦은 만큼 사전폐기 단가가 생산비 정도는 되도록 나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신청농가가 적었다. 그래서 1, 2차에 걸쳐 신청을 받고 폐기했다. 다 자란 마늘과 양파를 갈아엎는 농민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농사짓는 농민이라면, 아니, 농사일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런데 올해 마늘은 또 많이 심어졌다고 한다. 많이 심어졌다고 하려면 전체 소비량이 나와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마늘소비량 통계는 없다고 한다. 그러면 무슨 근거로 많이 심어졌다고 하는지? 여하튼 전국마늘생산자협회에서는 올해도 작년처럼 마늘가격이 폭락하도록 둘 수는 없기에 1월부터 농식품부와 수급회의를 진행했다. 빠르게 선제적으로 정부에서 가격안정대책을 내와야 하고 증가된 마늘재배면적만큼 사전폐기를 하자고 했다. ‘3월 마늘산지폐기 500ha’가 정부가 내놓은 1차 마늘수급대책이다. 생산자협회가 요구한 면적보다 많은 면적이다. 이것만 하면 그래도 올해 마늘값은 제대로 받겠거니 생각했던 농민들은 사전폐기 신청면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올해까지 마늘값이 폭락한다면 내년 마늘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정부가 내놓은 500ha의 2배가 넘는 신청면적이 접수됐다고 한다.

마늘가격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본 농민들로선 농사비가 적게 들어갔을 때 폐기하고, 다른 작물이라도 심어서 손실을 만회하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작년 9월은 비가 많아서 마늘논 장만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겨울이 따뜻하니 풀이 너무 많아 부지런한 농민들은 인건비를 지출하면서까지 벌써 한 번 이상 논에서 풀뽑기를 했다. 그런 마늘논을 제 손으로 갈아엎고 싶은 농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졌다고 하니, 수확기 사람 구할 걱정에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 사전폐기를 신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바다 건너 제주에서는 마늘협회 안덕지회 부회장이 사전폐기가 아닌 근본적인 농산물 가격보장을 요구하며 애써지은 마늘밭을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언제까지 갈아엎는 농사를 지어야 할까? 진짜 갈아엎는 농사 말고 잘 지은 농산물 수확해서 국민과 함께 풍년가 부르는 행복한 농사 한 번 멋지게 지어보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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