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94] 수종갱신

  • 입력 2020.03.22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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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하루는 강원대 산학협력단 인증센터 김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농장에 나와 있다면서 “나무가 다 없어졌네요”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거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5월 유기농 인증연장을 신청할 때 ‘수종갱신’을 꼭 써넣으라는 부탁이었다. 새로 과수원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6년차 인증을 받을 농장이라는 연속성 때문이리라.

사실 올해부터 알프스오토메는 유기농 인증을 받게 돼 있었다. 무농약부터 시작해 유기농 전환기를 마쳤기 때문이다. 올해 시나노골드로 수종을 갱신하더라도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언이다. 그러나 금년에는 열매가 없으니 유기농 사과가 나오려면 또 2~3년을 기다려야 한다.

아무튼 오늘은 하루 종일 혼자 미리 준비해둔 사과나무 묘목을 심었다. 아내는 둘째 딸 산바라지를 위해 집을 비우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꼬박 사나흘이 걸렸다. 5년 전에는 가깝게 지내던 다섯 부부와 큰 딸 내외가 내려와 나무심기 작업을 함께 했다. 농사일에 전혀 문외한인 벗들과 딸 내외가 애써준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문 낼 필요 없이 조용히 나 혼자 식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의 몇몇 농민들께서 도와준다고 했으나 그냥 내가 좋은 날 실시했다. 단내 나도록 힘들었으나 그래도 농사일에 조금은 요령이 생겼기에 혼자 할 수 있었다.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와는 식재방법을 좀 바꿔봤다. 우선 대형포크레인을 이용해 나무 심을 자리를 크게 파거나 퇴비와 용성인비를 섞어 구덩이에 넣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올해는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호미로 흙을 덮어 주는 형태로 묘목을 심었다. 지금까지는 별 생각 없이 포크레인 같은 큰 기계를 이용했으나 앞으로는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 이 작은 과수원에서조차 대형기계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퇴비를 구덩이에 넣어주지도 않았다. 용성인비도 당연히 한 톨도 안 넣었는데 무농약일 경우에는 소량을 쓸 수 있으나 유기농에선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퇴비나 유박같은 유기질비료는 나무 주변에 뿌려주고 적절한 영양소는 엽면시비로 보충해줄 예정이다.

나무사이 간격도 3m*1.5m에서 4.5m*4m로 넓혔다. 즉 이랑의 간격은 4.5m로 하고 나무와 나무사이 간격(주간)은 4m로 한다는 의미다. 요즘 사과묘목의 대목 대부분은 M9나 M26인데 왜성대목이기 때문에 밀식재배에 적합하도록 돼 있어 넓게 식재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두 배 정도 넓게 식재하기로 한 것은 나의 노동의 한계와 노령화에 맞추기 위함이다.

5년 전에는 나무들의 오와 열이 잘 맞지 않게 식재됐으나 이번에는 미리 줄을 띠워 오와 열을 정확하게 맞췄다. 오와 열은 정확하게 맞았으나 대각선은 조금 맞지 않게 됐는데 이는 밭 모양이 직사각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무 식재 전 오토메 때 사용하던 지지대를 다시 세우고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사과농장에서 설치하고 있는 5~6m 높이의 방풍·방충망 시설과 배수를 위해 필수라는 공관(구멍이 뚫린 관) 묻는 작업은 하지 않았다. 비용이 들더라도 하면 좋겠지만 돈도 못 벌면서 시설비만 자꾸 들어간다는 농장장의 일침은 있었고 시설재료비의 과다투입은 결국 업자들의 광고·홍보에 장단만 맞추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투입한 비용만큼 효과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나무심기 마지막 날 묘목을 심고, 물 주고, 지지대에 어린 묘목을 묶어주고, 굵은 가지는 전지해 주고, 물통·바가지 등을 정돈하니 어느덧 오후 5시 반이 됐다. 오늘까지 농사일기 마감인데 나른한 몸을 이끌고 지금 이 농사일기를 쓰고 있다. 암튼 잘 크고 자라주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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