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피해 일파만파 … 농촌은 총체적 난국

농산물 소비부진에 농민도 울상
인적 끊긴 농촌, 경제손실 막대
농번기 외국인인력 대란도 우려

  • 입력 2020.03.22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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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소비 감소로 대파 가격이 kg당 700원까지 떨어지자 지난달 20일 전남 진도군 지산면 관마리 들녘에서 곽길성(60)씨가 트랙터로 다 자란 대파를 갈아엎고 있다. 한승호 기자
소비 감소로 대파 가격이 kg당 700원까지 떨어지자 지난달 20일 전남 진도군 지산면 관마리 들녘에서 곽길성(60)씨가 트랙터로 다 자란 대파를 갈아엎고 있다. 한승호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대중의 불안과 위기감은 주로 도시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가시적인 피해를 양산했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에서 떨어진 농촌지역에도 음양으로 심각한 피해가 번지고 있다. 그 양상은 도시지역보다 더 복합적이고 전방위적이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농산물이라면 최대 대목을 놓친 화훼와 학교급식이 막힌 친환경이지만, 그 외 일반 농산물이라고 상황이 정상적이진 않다. 가정소비가 탄탄한 몇몇 품목이 아니고선 소비감소로 인한 가격 하락세가 뚜렷하다.

지난달 중순 kg당 700원대로 폭락한 대파가 산지폐기를 겪은 데 이어 최근엔 마늘도 산지폐기를 진행하고 있다. 햇마늘 수확기는 아직 두어 달이 남았지만, 저장마늘 소비가 부진해 포전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발 빠른 산지폐기로도 가격지지 성공 가능성은 비관적이다.

태풍 피해로 1월까지 20kg 2만원을 호가하던 무 가격은 최근 8,000원대까지 떨어졌다. 재파물량 집중과 기상호전 등의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코로나19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전형적인 외식 품목인 쌈채류 상황도 난항이며, 감자탕 등 외식 소비에 특화돼 있는 저장감자의 경우 20kg 1만원 미만의 대폭락을 맞았다.

심각한 소비침체에 농협과 지자체가 판촉활동에 애쓰고 있지만 큰 효과는 없다. 택배비를 지원하며 도지사가 감자팔이에 나선 강원도의 경우도 연일 완판 행진이라는 예상 외의 열풍을 불러일으켰지만, 현재까지 판매실적은 500톤가량으로 1만톤 재고량에 비하면 사실상 의미없는 수준이다. 재난 수준의 피해상황에서 지자체나 농협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뚜렷하다.

농산물 가격피해 뿐이 아니다. 질병 확산 방지를 위해 줄줄이 취소되고 있는 지역 축제들은 농촌경제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남원·구례 산수유축제, 담양 대나무축제, 고창 청보리밭축제, 부안·화개장터 벚꽂축제 등 농촌지역의 대표적인 축제들이 취소 또는 취소 예정돼 있다. 개중엔 논산·완주 딸기축제, 한라산 청정고사리축제, 양평 산수유·한우축제 등 지역 농특산물을 직접 앞세운 축제도 적지 않다.

광양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이달 초 열릴 예정이던 매화축제를 취소한 가운데 지난 3일 전남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을 찾은 일부 시민들이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를 구경하고 있다. 앞서 시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관광객들에게 매화마을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광양시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매화축제를 취소한 가운데 지난 3일 전남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을 찾은 몇몇 시민들이 매화를 구경하고 있다. 앞서 시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관광객들에게 매화마을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승호 기자

농산물을 내걸었든 내걸지 않았든 피해는 확연하다. 신동일 지리산구례공동체 전무는 “(산수유축제 취소로) 내방객이 예년의 절반 수준이다. 축제장 옆 로컬푸드 매장의 매출도 크게 줄었다. 나물류는 물론, 산수유농축액 등 가공품을 생산하는 농가의 타격이 크다”고 걱정했다.

딸기의 경우 생산량 감소로 요행히 가격이 뒷받침돼 축제 취소의 피해가 크진 않다. 하지만 관행출하와 거리가 먼 친환경 농가나 체험농장은 얘기가 다르다. 충남 논산에서 딸기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서교선씨는 “어린이집·유치원 등 월 2만명씩 받던 체험인원이 지금 하나도 없다. 인당 1만원씩 계산하면 월 2억원 손실”이라며 “딸기는 관행유통 시 70% 익은 상태에서 출하하는데 체험농장은 100% 익혀놔야 한다. 이제와서 도매시장에 내려 해도 제대로 된 값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농산물 가격이 무너지기 시작한 이래 전국엔 서씨처럼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체험농장을 꾸린 이들이 적지 않다. 경기 김포의 낙농 체험목장주 연덕흠씨는 “월매출 2,500만~3,000만원 올리던 게 지금 300만원이 됐다. 직접 제품을 만들어 아울렛 등 지역 매장에 납품하는데, 매장에도 손님이 끊겨 1,200만원 매출이 400만원이 됐다. 한 달에 사료비만 800만원, 직원 인건비만 700만~800만원이니 투자비, 자가인건비 등을 제하더라도 가만 앉아서 1,000만원 이상씩 손해 보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향후 농촌지역이 겪게 될 가장 큰 코로나19 피해로 인력난을 꼽는 사람도 적지 않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본국으로 귀국하거나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외국인노동자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최근 법무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자진신고·출국 건수만 봐도 지난달 셋째주까진 1,000명 남짓이던 주간 신고건수가 2월 마지막주부터 현재까지 5,000명 이상씩으로 늘어나 있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19 발생이 집중된 대구·경북지역의 분위기가 특히 심상찮다.

이영수 영천시농민회 사무국장은 “최근 마늘 산지폐기 신청을 받고 있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수확기에 인력을 확보할 자신이 없어 폐기 신청이 몰리고 있다. 지역 마늘농가의 80%가 신청 중”이라고 전했다. 최승만 전 춘천시농민회 부회장은 “당장은 농사일이 바쁜 시기가 아니라 인력 문제를 체감할 일이 없지만, 인력이 필요한 때가 오면 어느 지역에 얼마나 큰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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