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우리나라에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문구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언젠가부터 농촌은 ‘촌동네’라 불리면서 ‘낡고 쇠락한 곳’의 대명사인 양 여겨졌고, 농민 또한 촌뜨기, 촌놈 등으로 불리우며 무시당하는 풍조가 생겼다. 자연스레 농업 또한 공업이나 첨단산업과 대비되는 ‘옛날 산업’으로 천대받았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소위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을 펼치면서 더 가속화됐다.
해방 후 70년 이상 이런 역사를 경험하다 보니, 농민들로서는 소위 ‘촛불정부’라는 문재인정부가 공익직불제를 이야기할 때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랜 세월 열심히 농사짓고 국민 먹거리를 생산해도 천덕꾸러기 취급당한 농민들에게, 국가가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이야기하니 기대를 걸 만 했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현 정부의 공익직불제가 가진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여기서 다 이야기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일부 문제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그 동안의 직불제가 쌀농가 중심이었단 이유로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했다. 2005년 제정된 이래 유일하게 남았던 쌀값 폭락 방지용 안전장치를 풀어버림에 따라, 농민들은 쌀값 폭락과 연이어 벌어질지도 모를 주요 농산물 가격 폭락을 우려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 폭락이 농민들의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도 망친다는 점에서, 변동직불제 폐지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오히려 망치는 처사다.
둘째, 그러면서도 정작 진짜로 공익적 기능을 증진시키기 위한 대책은 텅 비었다. 농민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선택적 직불제, 즉 농업을 통한 생태계 복원, 경관 및 전통문화 보전, 오염물질 감축, 토종씨앗 보전 등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기존 직불금은 통폐합하고 그나마 있던 쌀 변동직불제까지 폐지한 상태에서, 정부는 진짜 공익 증진을 위한 새로운 체계 마련은 계속 미루고 있다. 정부는 농민들이 농업의 공익적 기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자발적 ‘실험’을 할 여지는 안 주고, 오히려 재배면적 조정의무와 각종 준수의무(예컨대 ‘화학비료를 감축해라’, ‘농약을 줄여라’) 등의 각종 ‘의무’만 부과해, 농민들의 자발성을 오히려 억압하려 한다. 이 또한 공익적 기능과 어긋난다.
무엇보다 제도 설계 과정에서 정부는 농민들과의 소통에도 나서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1~2월 50회에 걸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지만, 정작 농민단체들이 제기한 △재배면적 조정의무 폐지 △선택형 직불제 강화 등의 내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면서 어떻게 농산물 가격안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최소한의 설명도 없었다.
요컨대, 지금 문재인정부가 이야기하는 공익직불제엔 ‘공익’이 빠졌다. 농민들이 제대로 공익적 기능을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하지도 못하고, 그나마 있던 공익마저 다 빼앗는 게 오는 5월에 시행된다는 공익직불제의 실체다.
지난 11일, 전문가들이 모여 공익직불제에서 실종된 공익을 찾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의 논의과정을 살피면서, 독자들도 함께 ‘잃어버린 공익찾기’에 나섰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