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빠진 공익직불제

  • 입력 2020.03.15 18:00
  • 수정 2020.03.16 09:4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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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논갈이에 나서며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지금, 직불제 개편의 내용과 방향은 농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5월 시행을 앞둔 공익직불제가 과연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전히 농민은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지난 9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곡교리 들녘에서 한 농민이 트랙터로 논갈이를 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논갈이에 나서며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지금, 직불제 개편의 내용과 방향은 농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5월 시행을 앞둔 공익직불제가 과연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전히 농민은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지난 9일 충남 아산시 염치읍 곡교리 들녘에서 한 농민이 트랙터로 논갈이를 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우리나라에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문구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언젠가부터 농촌은 ‘촌동네’라 불리면서 ‘낡고 쇠락한 곳’의 대명사인 양 여겨졌고, 농민 또한 촌뜨기, 촌놈 등으로 불리우며 무시당하는 풍조가 생겼다. 자연스레 농업 또한 공업이나 첨단산업과 대비되는 ‘옛날 산업’으로 천대받았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소위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을 펼치면서 더 가속화됐다.

해방 후 70년 이상 이런 역사를 경험하다 보니, 농민들로서는 소위 ‘촛불정부’라는 문재인정부가 공익직불제를 이야기할 때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랜 세월 열심히 농사짓고 국민 먹거리를 생산해도 천덕꾸러기 취급당한 농민들에게, 국가가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이야기하니 기대를 걸 만 했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현 정부의 공익직불제가 가진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여기서 다 이야기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일부 문제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그 동안의 직불제가 쌀농가 중심이었단 이유로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했다. 2005년 제정된 이래 유일하게 남았던 쌀값 폭락 방지용 안전장치를 풀어버림에 따라, 농민들은 쌀값 폭락과 연이어 벌어질지도 모를 주요 농산물 가격 폭락을 우려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 폭락이 농민들의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도 망친다는 점에서, 변동직불제 폐지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오히려 망치는 처사다.

둘째, 그러면서도 정작 진짜로 공익적 기능을 증진시키기 위한 대책은 텅 비었다. 농민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선택적 직불제, 즉 농업을 통한 생태계 복원, 경관 및 전통문화 보전, 오염물질 감축, 토종씨앗 보전 등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기존 직불금은 통폐합하고 그나마 있던 쌀 변동직불제까지 폐지한 상태에서, 정부는 진짜 공익 증진을 위한 새로운 체계 마련은 계속 미루고 있다. 정부는 농민들이 농업의 공익적 기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자발적 ‘실험’을 할 여지는 안 주고, 오히려 재배면적 조정의무와 각종 준수의무(예컨대 ‘화학비료를 감축해라’, ‘농약을 줄여라’) 등의 각종 ‘의무’만 부과해, 농민들의 자발성을 오히려 억압하려 한다. 이 또한 공익적 기능과 어긋난다.

무엇보다 제도 설계 과정에서 정부는 농민들과의 소통에도 나서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1~2월 50회에 걸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지만, 정작 농민단체들이 제기한 △재배면적 조정의무 폐지 △선택형 직불제 강화 등의 내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면서 어떻게 농산물 가격안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최소한의 설명도 없었다.

요컨대, 지금 문재인정부가 이야기하는 공익직불제엔 ‘공익’이 빠졌다. 농민들이 제대로 공익적 기능을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하지도 못하고, 그나마 있던 공익마저 다 빼앗는 게 오는 5월에 시행된다는 공익직불제의 실체다.

지난 11일, 전문가들이 모여 공익직불제에서 실종된 공익을 찾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의 논의과정을 살피면서, 독자들도 함께 ‘잃어버린 공익찾기’에 나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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