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이 세계는 좋아질까

  • 입력 2020.03.15 18:00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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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2_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다소 진정세로 돌아선 것 같다. 이 칼럼이 출간되는 날에는 코로나19 감염자가 더욱 줄어 진정국면으로 들어서길 기대해본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 등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 쉽게 잦아들 것 같지는 않다.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이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공포가 일상이 돼버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부가 제시하는 예방수칙을 잘 지키는 것 말고는 없다.

몇 해 전 한 스님이 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이 유행한 적 있다.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싶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한없이 쌓아올린 바벨탑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광경 앞에서 우리는 공황상태에 빠진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으로 만들어낸 많은 가치들이 전도되고 부정되는 요즘이다. 하늘길이 막히고 바닷길마저 끊어지고 있다. 분주했던 버스와 기차가 비어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고 사람이 사람을 의심하고 사람이 사람을 혐오한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부정이 만연하고 있다. 종교는 더 이상 구원을 위한 으뜸의 가르침이 아닌 인간 파멸의 도구가 되고 있다. 우리는 몰랐다. 종교가 얼마나 타락하고 악의적일 수 있는지를. 코로나19가 알려준 사실이 너무 많다.

역사학자와 인류학자들은 고대 도시 멸망의 이유 중 하나로 전염병을 지적한다. 소위 문명화됐다고 자부하는 도시인들은 도시의 바깥 존재들을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도시 바깥의 존재들이 못 들어오게 단단히 성을 쌓고 문을 닫았다. 농촌사람들과 자연은 배제의 대상이었고 두려움의 대상이고 무시의 대상이었다. 인간이 자연을 멀리하면 할수록, 자연을 배신하면 할수록 자연도 인간을 배신하게 된다. 인간이 아무리 자연을 멀리해 공고한 성을 쌓더라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와 세균에 침몰하게 된다. 유럽인구의 1/4이 죽은 흑사병이 그랬고 수천만명이 사망한 스페인독감이 그랬다.

중국 우한은 1938년 10월 10일, 의열단의 후신인 조선의용대가 창립된 역사적인 도시기 때문에 8년 전 한 번 방문한 적 있다. 우리에게 낯선 도시지만 우리 독립운동 역사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도시다. 그런 우한이 코로나19의 진원지가 되면서 원망의 대상이 돼버렸다. 나는 중국의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원초적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이름도 몰랐던 도시들도 막상 찾아가면 몇 백만명의 인구가 되고 조금 알려진 도시에선 천만 인구가 기본이었다. 갈수록 공룡화 돼가는 도시들을 인간이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자체가 오만이다. 만약 서울이라는 도시가 중국 우한처럼 봉쇄됐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 대구 하나도 통제하기 힘든데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에서 대구와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상상하기 힘든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럽의 도시들은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대개 크지 않다. 독일 같은 경우에 베를린이나 뮌헨정도가 큰 도시이지 나머지 도시들은 불과 몇십만 명에 불과하다. 도시가 크지 않은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전염병으로부터 사회적,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역사적 교훈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촌에서 거주한다는 점이다. 도시에서 일을 하더라도 거주는 농촌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과거 역사에서 배울 것을 배운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이 세상은 좋아질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에 가려진 우울한 소식들을 연초부터 많이 들었다. 남극의 기온이 20℃를 넘어섰고, 불평등은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고, 출산률은 또 다시 최저치를 갱신했다. 심각한 불평등은 우리 사회를 좀먹는 바이러스였고 사회적 병리현상은 의학적 병리현상과 맞물리면서 우리 사회를 수렁으로 빠트렸다. 우리는 일상이 비상이었는데 그 비상이 코로나19로 감춰져버렸다. 특히 농촌은 늘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배제돼왔다. 늘 비상사태였지만 무감각해진지 오래다.

우리는 우리 후손에게 어떤 세상을 남겨주려고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도 무감각한지 모르겠다. 도시가 전염병과 같은 재난으로 멸절돼 농촌으로 찾아오길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는 날을 대비해야 한다. 비상사태가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생태적 마을공동체를 회복하고 신뢰와 협력을 통한 자립적 삶을 구축하는 것, 코로나19가 지나간 자리에 싹트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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