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우리의 동선

  • 입력 2020.03.15 18:00
  • 기자명 최외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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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순(경남 거창)
최외순(경남 거창)

우리집 아이들은 2월 둘째 주부터 시작된 봄방학 그리고 이어진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연기돼 한 달째 집에서만 살고 있다. 한적한 시골집 아이들에겐 가장 안전한 자가 격리이자 본인들에게는 생애 더 없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생각해보면 돌쯤부터 시작된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그리고 학원까지의 사회생활은 꽉 짜여 있었고 소위 멍 때릴 시간도 없던 아이들의 시간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여져 버렸다.

지루하고 답답할 것 같은 아이들은 그저 한적한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집에서 한없이 뒹굴고, 마당에 나와 서성거리고, 주변에서 냉이를 캐오는 일까지 놀이삼아 지내며 이런 시간이 불현듯 끝날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재난과 같은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주어진 것에 흐름을 맞추고 있다.

반면 뉴스를 보니 학교 개학 연기, 회사 휴업 등과는 달리 학원은 운영되는 곳이 많다고 한다. 참 대단한 교육열이지만 이유가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많은 것이 느슨해졌지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아이들에게 걸려있는 고삐의 당김은 여전한 것 같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분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나조차도 2월말부터 심각하게 돌변한 상황에서 로컬푸드 직매장 운영과 아이들의 거취 등으로 혼란을 겪어야 했다. 하루 빨리 이 바이러스로 인한 혼란이 끝나기를 바라본다.

한편,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사회가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있었고 자칫 느슨하게 돌거나 멈춘다면 큰일이 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일부분 사실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생각해본다. 어느새 우리는 지구상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식재료도 맛보고, 다니고, 생산하고, 소비한다.

글로벌하게 이것이 마치 잘 사는 방식인양 우리 내면에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연수도 이왕이면 해외로 가고 여행도 그렇다. 어쩌면 익숙한 일이 돼버렸고 이를 부정적으로 치부했다간 촌스러워진다. 그래도 촌스러워지자. 좀 미련하고 답답해지자.

가까이에서 생산되지 않는 먹거리는 먹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굳이 멀리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면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많은 경험이 지식과 비례하고, 소유와 비례하고, 삶의 질과 비례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를 먹어야 잘 먹는 것이고 많은 곳을 다녀야 잘 사는 것이고 의미있는 것인지. 우리의 동선이 코로나19 확진자보다 동그란 지구에게 덜 위험한 것이었는지. 우리의 삶의 방식이 과했던 것은 아닌지. 많이 일하고 많이 생산해야 하며 많이 소비하는 지구의 많은 것들을 태워내는 삶이 미덕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우리집 앞 밭주인 할머니는 해가 뜨면 밭으로 해가 지면 집으로 가신다. 차로 태워드린다고 해도 작은 보조의자를 밀며 짐이 있어도 며칠을 조금씩 나르며 그렇게 오고 가신다. 괭이로 땅을 파고 그렇게 조금씩조금씩 한 해 농사를 시작하고 마무리하신다. 최소한 할머니의 동선은 간단하고 소박하며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다. 여성농민은 씨앗도 지구도 인류도 이렇게 지켜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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