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중동 바람⑤ ‘시간 놓고 돈 먹기’ - 육신은 고달팠다

  • 입력 2020.03.15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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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중부 ‘카미스’ 지역에 대규모 군대막사를 건설하는 한국 건설업체의 공사현장.

군 시설물 중 장교 숙소(BOQ)로 쓰일 건물이 완공단계에 접어들어서, 마지막 페인트 작업을 남겨두고 있다. 마침 그 공기(工期)에 맞춰 한국에서 날아간 도장공들이 아침, 작업출동을 준비하고 있다. 담당주임이 작업지시를 내린다.

-제1조가 다섯 명이지요? 비오큐 A동부터 작업 들어갑니다. A동은 200시간이 할당됐으니까, 자재창고에 가서 페인트 수령한 다음에 곧바로 현장 출동하세요.

비오큐 한 동을 페인트칠하는 데에 200시간이 할당되었다는 말은, 다섯 명의 인부가 하루 여덟 시간씩, 닷새 동안 일할 작업분량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계산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 장교 숙소 A동의 페인트 단장을 끝내는 데에 닷새가 꼬박 걸리지는 않는다. 대체로 그 이전에 작업이 끝난다. 도장공들이 현장으로 출동하면서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보면 이러하다.

-닷새까지 갈 것 뭐 있나. 부지런히 해서 한 사흘 만에 200시간 끝내버리자구.

-그럽시다, 까짓것.

그러니까 하루 8시간만 작업하고 일과를 마치는 인부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서 이틀 동안의 일거리를 하루에 끝냈다면, 개인별 작업일지에는 그 날 하루에 열여섯 시간 일한 것으로 기록된다. 회사에서 5일간의 작업분량으로 할당한 일거리를, 강행군을 해서 3일 만에 끝냈다면 사흘에 닷새의 일당을 버는 셈이다. 작업체제가 이러하다보니, 사우디 건설현장에서는 공사 감독관이 인부들을 채근하고 독려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일할 뿐 아니라 연장근무를 밥 먹듯 했기 때문이다.

당시 작업현장의 주임이었던 김윤억 씨는 그러한 현장 분위기를 두고 일꾼들 스스로가 ‘시간 놓고 돈 먹기’라 일컬었다고 회상한다.

“물론 일꾼 중에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혹은 스스로 몸 생각을 해서. 하루 딱 여덟 시간만 일하고 칼같이 일과를 마치는 사람도 있긴 했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하고, 죽어라고 일한 사람하고는, 급여 차이가 크게 났지요.”

드디어 한 달 동안의 작업을 결산하는 날, 인부들이 한 사람씩 사무실로 들어온다.

-송윤남 씨, 아이고, 이번 달에 많이 했네요.

-예, 일요일도 뭣도 없이 연장근무를 밥 먹듯 했는데…몇 시간이나 나왔어요?

-이번 달 통계가 500시간이 넘는데요. 512시간입니다. 이리 와서 장부를 보세요. 이게 각 주말 통계고…다 합해서 512시간 맞지요? 자, 확인했으면 여기에다 사인하세요.

-아, 예. 그럼 월급은 언제 나오지요?

-매월 10일에 고국에 계시는 부인 명의의 통장으로 들어갑니다.

하루 8시간씩, 일요일까지 쉬지 않고 꽉 채워서 노동을 했다 해도 240시간인데, 도대체 한 달에 512시간 일했다는 통계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날마다 열 일고여덟 시간씩 일을 했다고? 그건 아니다. 물론 연장근무도 했겠지만, 이틀 분량을 하루에 달성했을 정도로 노동의 강도가 그만큼 셌다는 얘기다.

사우디로 간 노동자들은, 이른바 오일달러를, 그렇게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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