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Ctrl+C, Ctrl+V는 똥보다 못하다

  • 입력 2020.03.08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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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심한 욕 중 하나가 ‘교조주의자’다. 좋다고 여겨지는 사상이나 사례를 자기 줏대 없이, 자기네 지역 형편에 맞지 않게 그저 절대적 진리인 양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통 교조주의자라 한다.

왜 굳이 교조주의 얘기를 하냐 묻는다면, 푸드플랜 때문이다. 지금 푸드플랜을 추진하는 많은 지자체들의 ‘절대적 진리’가 있으니, 바로 전북 완주군 사례다. 물론 완주군 사례는 성공적이었고 모범이 될 만하다. 이에 상당수 지자체가 완주군 모델을 ‘벤치마킹’하려 한다. 전국 각지의 공무원들이 완주를 방문 중이며, 각 지자체장들도 “완주를 따라하자”고 외친다.

그러나 완주군 상황이 모든 지역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순 없다. 완주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지역 특성을 제대로 이해한 민·관이 장기간 공들여 기획생산체계를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주 모델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민·관협치 △장기간에 걸친 지역 생산체계 구축 △지역 내 먹거리순환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

지역 생산체계를 구축하려면 먹거리체계를 고민하는 사람들(시민사회든 공무원이든)이 지역 농민들을 만나고 제대로 소통해야 한다. 달리 말해 지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자기 발붙인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완주 모델이 좋다 해서 ‘Ctrl+C(복사), Ctrl+V(붙여넣기)’만 하는 게 현재 로컬푸드와 푸드플랜의 실상이다.

‘Ctrl+C, Ctrl+V’를 정부에서도 부추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초 지역단위 먹거리 선순환체계 구축 관련 안내서를 발간하면서 완주 모델을 모범사례로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책자를 지자체와 관련기관, 민간단체에 제공하고 먹거리 선순환체계 구축 교육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라 한 바 있다.

최근 지자체 푸드플랜 민·관협치 과정에서 문제를 겪었던 일부 지자체 주민들을 만났을 때도, 그 중 한 사람이 “우리 지역에 완주군 로컬푸드 설계에 참석했던 사람이 와서 강연을 했다”며 “많은 지자체들이 정작 지역 내에서 생산자들과는 제대로 소통 안 하면서 완주에서 계획 수립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는 상황”이라 언급한 게 생각난다.

마오쩌둥은 교조주의에 대해 “똥보다도 못하다”고 일갈한 바 있다. 똥은 퇴비로 쓸 수 있으니 가치가 높지만, 교조주의는 그저 실패를 낳을 뿐이다. 이 땅 곳곳에서 푸드플랜을 이야기하는 지자체 관계자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여러분이 사는 땅은 완주가 아니라고. 그리고 지역 내에서 민·관협치부터 제대로 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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