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93] 그때 가서

  • 입력 2020.03.08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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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벌써 5년 전이 됐다. 귀촌·귀농이라는 큰 변화 앞에 뭘 어떻게, 어디서부터 적응하며 정착해야 할지 사실 막막했다.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떠난지 오래됐고 일가친척도 거의 없는 생소한 곳이었다. 특히 농사일에 관해서는 정말 하나도 모르는, 요샛말로 ‘1도 모르는’ 사람이 농사일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모든 게 서투르고 힘들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서툴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서툴고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알프스 오토메 농사는 접기로 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소과 중심으로 수요가 이동한다고는 하나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고, 저장성이 너무 낮아 유통 중 푸석푸석해져 맛과 상품성이 쉽게 떨어지는 단점이 컸다. 그밖에도 유기농 재배는 작은 사과나 큰 사과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벌레가 좀 먹으면 작은 과일은 아예 사람이 먹을 것이 없으나, 큰 과일은 그래도 먹을 것이 조금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봄에 냉해 피해를 본 것이 결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봄 냉해로 사과 꽃의 99%가 떨어지는 피해를 봤다. 그렇더라도 일 년간 나무를 잘 가꿔야 하는데 의욕이 상실돼 제때 방제도 안 해주고 정지·전정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결국 이런 상태로는 올해도 좋은 수확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됐고, 금년에 나무를 잘 가꿔야 내년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1~2년 더 오토메 농사를 지속하기보다 아예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는 게 나을 것이란 판단을 하게 됐다.

주변에서는 약 줄 필요 없고 비료도 줄 필요가 없는 개복숭아나 돌배가 어떻겠냐는 의견도 줬고, 일년에 한 번 연초에 수확해 판매할 수 있는 두릅을 권하는 분도 있었다. 손이 제일 적게 가는 데다 약 치고 전지할 필요가 거의 없는 호두, 심어만 놓으면 매년 나오는 산마늘과 고사리, 곰취 등 나물류 그리고 우리지역 대표 농산물인 감자·옥수수·들깨 등 셀 수 없이 많은 의견들을 주셨다.

모두 다 일리 있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말씀처럼 생산해내기가 수월한 것은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판로를 생각하면 막연하다. 팔기도 어렵고 다 먹기도 어려운 어정쩡한 소규모 농가의 고민이 이러하리라.

엊그제 만난 50대 중반의 농민께서는 나에게 나이를 물었다. 그래서 ‘60대 후반이고 내일모레면 70’이라고 대답하자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시면 사과는 일이 많고 힘드니 무조건 호두나무 심는 것이 옳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여 “농촌 노인들을 보면 75세 전후로 급격히 늙고 체력이 소진돼 일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윤 교수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과 같은 체력과 건강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속으로 ‘지금도 힘에 부쳐서 조금씩 밖에 일을 못하는데’ 라고 되뇌었다.

여하튼 사과농사를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작심했다. 4년여 기간 동안 오토메 사과를 농사지으면서 기초기술은 습득했으니 이를 기초로 그 어렵다는 유기농 사과재배에 다시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체력이 얼마나 받쳐줄지, 건강은 또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나이가 됐지만, 그래도 아직은 젊다 생각하고 유기 사과 농사를 다시 지어보려 한다. 시나노 골드와 부사 묘목은 이미 구해 놓았으니 3월 중순경에 식재할 예정이다. 힘에 부치고 체력이 고갈되면 그때 가서 또 살아갈 방법을 찾으면 되겠지. 어차피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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