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난리통’, 농촌은 어떤 상황일까

거점 판매 방식으론 농촌서 마스크 균등 배분 어려워
학교급식 납품농가 대타격 … 도매시장·농자재업계도 위축
"농업계 특수성 고려한 지원책 반드시 추경에 반영돼야”

  • 입력 2020.03.06 16:21
  • 기자명 한우준·권순창·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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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권순창·장수지 기자]

지난 3일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 이포우체국 앞에서 우정사업본부가 공적조달하는 보건용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하루 판매 수량은 1인당 5매씩 85인분으로 85번째 마지막 시민이 줄을 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면소재지까지 먼 길을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지난 3일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 이포우체국 앞에서 우정사업본부가 공적조달하는 보건용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하루 판매 수량은 1인당 5매씩 85인분으로 85번째 마지막 시민이 줄을 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면소재지까지 먼 길을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현 시기 개인위생 필수품으로 취급되는 보건용 마스크의 품귀현상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지역을 막론하고 구매가 어려운 실정이지만, 농촌에서는 구매 대기선 상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일상생활의 불편을 넘어 농가소득도 쪼그라든다. 학교급식·도매시장·직거래 등 오프라인 판매망에 의지하던 농가들은 갑작스런 판로 위축에 고심하고 있고, 농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나라 경제 전반이 위축돼가는 가운데 정부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책을 뒷받침할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했지만 농업계에 대한 직접적 지원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마스크 구매 접근 자체가 어려워

지난 3일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소재지 이포우체국 앞에선 오전 11시에 판매를 시작하는 공적조달 마스크 구입을 위해 모여든 시민들이 긴 줄로 늘어서있었다. 우정사업본부 방침에 따라 수량은 85매로 전국 대부분의 우체국과 동일하다.

85번째로 마지막 순번을 받은 한 중년남성 등에 ‘마지막 고객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인 A4 크기의 안내문이 붙었다. 그러나 9시 20분에 왔다는 이 남성은 안타깝게도 기다리는 도중 앞에서 3명이 새치기를 하는 바람에 번호표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관이 등장하고 우체국 직원이 나섰지만 끝내 ‘양심선언’은 등장하지 않았다.

부족한 수량도 문제지만 농촌에서는 거점에서만 공급되는 탓에 일부 면소재지 이외의 거주자는 구입처 접근 자체가 힘들다. 마침 농번기가 시작되는 시기인 탓에 무작정 경작지를 비울 수도 없거니와, 농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년층의 주민들은 이동 능력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85번 남성’ 이후 뒤늦게 도착한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돌렸는데, 참외농사를 짓는다는 한 여성농민은 “아침에는 하우스를 열어야 하고(환기) 곧 다시 돌아가야 해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다. 오늘로 4일째 마스크를 못 사고 있다”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돌아갔다. 거주지에서 마스크를 판매하지 않아 인근 흥천면에서 이포면까지 넘어 온 사람들도 있었다.

부산 기장군이 세대별로 마스크를 직접 지급해 큰 호응을 얻은 가운데 몇몇 지자체들 또한 직접 배분에 나섰지만 일부일 뿐인데다 취약계층 대상으로 그치고 있다. 권성진 홍천시농민회 사무국장은 “농촌 대부분이 연세 드신 분들인데 그분들 같은 경우만이라도 읍면사무소 직원들이 나눠줘야 맞다”고 말했다.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남도연합 부회장(합천)도 “다들 같은 얘기를 할텐데, 농민들 전부 면에 가기도 어렵고 줄 서 있을 시간도 없기 때문에 근처에 살거나 갈 수 있는 사람만 가는 상황”이라며 “농협이나 우체국에서 판매하지 말고 주민등록을 관리하는 면사무소에서 이장이나 부녀회장을 통해 신청을 받아 배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마스크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농촌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각종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다는 주장이다. 오미란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여성정책팀장은 “이미 여성농민들로부터 농촌 읍·면지역 공급에 대해 유사한 제안을 많이 받아서 건의를 올린 상황”이라고 답했다.

 

개학 연기·외식 감소에 판로 타격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농가소득에도 직접적 타격이 생겨나고 있다. 우선 이번 감염병이 각지의 지역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에 확산된 탓에 특산품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시름이 깊다.

이포우체국 앞에서 만난 참외 농가들은 5월에 열리는 여주금사참외축제의 취소를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 ‘금사참외’라 불리는 이 지역 참외는 노상 직거래 판매의 비중이 높은데, 유동인구가 감소한 마당에 축제까지 무산되면 소득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거란 예상이다. 이 축제만 해도 참외 등 지역특산물 판매로 통상 6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당장 바로 눈에 보이는 타격은 학교급식 납품 비중이 높은 친환경농산물 생산 농가들의 피해다. 현 시점 기준 개학 예정일은 오는 23일로 예정보다 최소 3주나 미뤄진 가운데 본래 이 기간 동안 납품돼야 할 농산물들이 갈 곳을 잃은 상황이다(관련기사 11면). 저장성이 높지 않은 과채류의 경우 소비대책이 시급한 가운데 일부 지자체는 직접 대책 마련에 나섰다.

충청남도교육청은 6일부터 교육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급식 납품 농산물들로 구성한 꾸러미 판매를 시작했고, 아산시에서도 시와 농협을 중심으로 아파트 단위 공동구매가 이뤄지고 있다. 경기도농식품유통진흥원도 판로가 막힌 딸기들의 공동구매를 직접 추진하고 나섰다. 현재 이러한 시도들이 다행히 좋은 반응과 성과를 얻고 있어 정부 주도 대책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경기도농식품유통진흥원 관계자는 “1주일분 딸기 생산량이 7.8톤인데 판매시작 첫날부터 3일간 3톤가량이 판매됐다”고 밝혔다.

학교급식 영역뿐만 아니라 일반 농산물 유통경로도 타격을 입었다. 확진자 동선에 있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들이 대거 휴장함은 물론이고, 대구에선 도매시장(대구도매시장)까지 1988년 개장 이래 처음으로 휴장했다. 대신 온라인구매가 늘어나는 효과도 일부 품목에서 발생했지만 유통의 불안요소가 분명 존재하는 상태다.

가시적 원인은 직격탄을 맞은 외식업계다. 급속한 불안감 확산으로 외식 수요가 감소하면서 농산물의 외식업계 소비기반이 사실상 붕괴됐다. 도매시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코로나 때문에 도무지 소비가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가락시장 중도매인 나상기씨는 “소비가 평소보다 20~30%는 줄어든 것 같다. 거래처들이 아예 문을 닫고 시장에 안 나오는 경우도 많고, 웬만한 마트들까지 다 어려워한다. IMF 때도 이 정돈 아니었다”고 말했다.

과채류, 양파·마늘 등 일부 품목은 가격이 괜찮지만 외식업 소비가 많은 품목들을 중심으로 현저한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대파는 kg당 900원대, 감자는 20kg당 1만원대로 둘 다 평년대비 반토막 수준의 대폭락이다.

무·양배추도 겨울철 주산지가 제주인 것을 감안하면 수급상황 대비 가격하락세가 매우 심한 상황이다. 지난해 가을 태풍피해로 생산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생산량 감소로 인한 가격지지 효과까지 사라져버렸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박흥식, 농민의길)은 지난 5일 낸 성명에서 “농가비율이 총가구의 5.2%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이번 추경 예산에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예산을 단 한 푼도 편성하지 않은 것은 농민이 코로나19 피해자가 아니라고 보는 것인가”라며 “농민의길은 농민에 대한 아무런 배려도 없는 정부의 추경안에 강력히 항의하며 국회 논의 과정에서 대책이 포함되길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농민의길의 요구는 △취약계층(소득 하위20%) 농민에 대한 대책 △농산물 가격폭락 농가에 대한 생계비 지원 △학교 개학 연기로 학교급식에 납품해야 하는 친환경 재배 농가들의 피해대책 등이다.

 

농자재 업계에도 영향

농약 전문 A업체 홍보 담당자는 “최근 정지작업이 끝난 과수도 그렇고 지금 한창 농약을 구입하고 살포할 시기인데 지역 농약판매상은 물론 일부 농가에서도 방문 자체를 거부하는 만큼 판촉이나 영업적인 부분에 차질이 많다”고 밝혔다.

또 “가까운 시기에 우선 사용될 제품은 이미 생산이 완료돼 농민들이 농약을 구입해 사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전망되지만, 최근 중국 내에서의 물류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하반기에 쓰일 농약 원제 확보는 조금 걱정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농약 업계 전언에 따르면 국내 농약의 원제 수입률은 95~96%에 달하며, 그중 60% 이상을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다른 업체 관계자 역시 “지금으로썬 홍보·마케팅 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병해충에 대응해 제품을 생산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제는 어느 정도 확보해둔 상태지만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는 만큼 추후 여건에 따라 생산일자를 조정하는 등의 대처 방안을 마련 중에 있다”고 전했다.

B종자 업체 관계자도 “시기적으로 봄무·봄배추 종자가 팔릴 땐데, 일부 지역에서 인력 수급 및 바깥 활동에 어려움을 겪으며 재배를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종자 판매 자체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는데다 지역 출장까지 어려워 판촉·영업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히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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