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중동 바람④ 누군가에게 사우디는 더욱 뜨거웠다

  • 입력 2020.03.08 18:00
  • 수정 2020.03.09 12: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1980년 여름, 한진건설의 하청업체 직원인 김윤억 씨가 한국에서 선발한 30여 명의 건설노동자들(페인트공)을 인솔하여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공항에 도착했다.

사우디에 첫발을 내디딘 한국인들은 너나없이, 우선 맹렬한 기세로 정수리에 내리꽂히다시피 한, 송곳 같은 햇볕에 기가 꺾였다. 여름철의 평균 최고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었다.

하지만 그 지역은 습도가 낮기 때문에, 제아무리 불볕더위가 내리쬐는 날에도 그늘에만 들어갔다 하면 거짓말같이 시원하더라는 게 공통적인 체험담이다.

노동자들을 태운 버스가 리야드 공항에서 두 시간 가량을 달린 뒤에 멈춘 곳은 사우디 중부의 ‘카미스’라는 지역이었다. 당시 한진건설이 대규모의 군대 막사와 흔히 비오큐(BOQ)라고 부르는 장교숙소를 짓던 공사현장이 그 곳에 있었다.

“일꾼들 숙소가 조립식 건물이었는데, 흡사 군대 내무반처럼 한가운데에 통로가 있고 양쪽에 3층으로 침대가 좍 놓여있었어요. 지금이라면 좀 답답하게 느끼겠지만, 그때만 해도 대부분 달동네에서 사글세방 살다 간 사람들이잖아요. 오히려 그 컨테이너 숙소가 깨끗하고 좋기만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쌩쌩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다음 날 아침, 새로 전입한 도장공들에 대한 현장배치가 이루어졌다.

-저는 비오큐 건설현장의 소장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인적사항과 개인별 기능을 다시 한 번 확인을 한 다음에 작업장을 배정하겠습니다. 서승남 씨 나오세요. 흠, 도장(페인트 칠) 경력이 얼마나 되지요?

-7년입니다.

-좋아요. A공구로 배치할 테니까 김윤억 주임을 따라서 현장으로 가세요. 다음 최종범 씨? 경력이 5년이라고 했는데…어디 손 좀 펴보세요. 어이구, 이 양반 공사판 처음이구먼.

-처음이라니요. 내가 이래봬도 페인트 붓을 잡은 지가….

-박 주임, 이 사람 저 쪽으로 데려가서 테스트 좀 해봐요.

현장의 인력관리 책임자는, 경력이나 기능이 미심쩍다 싶은 노동자들을 불러내서는 테스트를 하게 했는데, 그들의 분별력은 감쪽같았다. 불려나간 사람에게 페인트 통과 롤러를 건넨 주임이, 가장 어렵다는 건물 천장의 도색을 과제로 제시했다. 아닌 게 아니라 ‘5년 경력’은 엉터리였다.

-허허, 이 사람은 아예 기본이 안 돼 있네. 롤러에 페인트를 묻혔으면 칠이 흐르지 않도록 나무 판에다 두어 번 굴리고 나서 천장으로 쳐들어야 한다는 것도 몰라요? 누구한테 뒷돈 얼마 주고 여기 뽑혀왔어요? 일단 B공구 3작업장으로 가세요!

그런데, 졸지에 얼치기 도장공을 팀원으로 배정받은 B공구 제3작업반의 반장이 펄쩍 뛴다.

-아니, 소장님, 이런 사람을 우째 하필이면 우리 작업반에 끼와 넣는 깁니꺼!

-일단 일 시켜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잡역부로 돌려요!

기능이 모자란 사람을 배정받은 팀의 작업반장이 이처럼 펄쩍 뛴 것은, 독특한 노임 산정방식 때문이었다.

“사우디 현장에서의 급여 지급은 일종의 성과급 방식이었어요. 일정한 작업분량을 시간 단위로 떠맡기는 식이죠. 가령 5인으로 구성된 어느 작업반에게 비오큐 한 동의 도색을 통째로 맡기면서 ‘총 작업시간으로 200시간을 인정하고, 전체 노임은 얼마로 한다’, 하는 식으로요.”

그러니 편법으로 사우디에 날아간 사람은 현장의 동료들 사이에서도 찬밥 취급일 밖에.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