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대는 지자체 푸드플랜 민·관협치

  • 입력 2020.03.01 18:00
  • 수정 2020.03.10 10:52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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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각 지자체의 푸드플랜 관련 민·관협치 과정이 삐걱대고 있다. 적극적으로 농업·먹거리 관련 의제를 제시하는 시민사회에 비해, 지자체 측은 논의에 소극적이거나 아예 시민사회와의 논의도 없이 사업을 일방 추진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최근 지자체 푸드플랜 관련 민·관협치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나타나고 있을까. 일부 지자체에서 푸드플랜에 참여한 사람들이 전한 지역 푸드플랜 민·관협치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전국먹거리연대 출범식에서 각계 인사들이 “푸드플랜의 올바른 정착”을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전국먹거리연대 출범식에서 각계 인사들이 “푸드플랜의 올바른 정착”을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내년부턴 그렇게 하겠다”만 8년째

충북 충주시는 시민사회의 친환경 학교급식 실현운동으로 학교 무상급식 지원조례 제정을 이끌어낸 지자체 중 하나다. 그럼에도 2020년 현재 충주시의 공공급식 관련 민·관협치는 그리 순조롭지 못하다.

충주시에서 민·관협치 조직으로 구성한 학교급식심의위원회는 충주시 학교 무상급식 지원조례 제5조 규정에 따라 학교급식 관련 지원계획과 운영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그러나 심의위 회의는 매년 형식적으로 학교 개학 직전인 2월 중후반에만 진행된다. 여기서 논의하는 내용은 사실상 시 학교급식 공급 친환경 쌀 가격결정 외엔 없다.

충주 시민사회는 2003년 무상급식 지원조례 제정 과정 및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충주 학교급식 발전을 위한 친환경농가 조직화, 친환경농산물 품목 다변화, 시 직영 학교급식지원센터 운영 등을 촉구해 왔다. 매년 2월 심의위 회의 때마다 시민사회는 충주시에 이러한 내용들을 반복해서 제기했다.

그럼에도 충주시 측은 회의 때만 알겠다고 하고 정작 이를 위한 실천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충주시 학교급식에 들어가는 친환경농산물은 오직 쌀 뿐이다. 지난해까지 학교급식심의위 시민사회 측 위원으로 들어갔던 신건준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사무국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8년 동안 심의위원회에 들어갔는데, 들어갈 때마다 ‘심의위 회의를 지금처럼 학교급식 시작 시점인 3월초에 임박해서만 할 게 아니라, 사전에 급식안건 검토 소위원회를 하든, 협의를 위한 간담회를 갖든 해야 한다’고 촉구해 왔다. 공급물품이나 공급 대상 확대 여부에 대해 검토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처럼 매년초 형식적 회의만 가지면 위원들로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런 얘길 하면 시 관계자들은 ‘내년부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가 되면 또 예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됐고, 변한 게 없다.”

이런 상황의 반복은 충주 학교급식 담당부서의 업무체계가 불안정했던 것과도 관련 있다. 학교급식 담당부서는 2년에 한 번씩 바뀌었다. 총무과로 갔다가 여성청소년과로, 또 평생학습과로 옮기는 등 끊임없이 ‘이사’했다. 담당 직원도 1년에 한 번씩 바뀌었다. 

지난해 2월 심의위 회의에서 시민사회 측 위원들은 이 문제를 지적하며 “친환경농산과로 옮기던지 해서, 한 부서에서 오랫동안 급식업무를 담당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충주시 측은 “담당자가 바뀔 수 있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했을 뿐이다.

친환경 쌀이나마 농가들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또한 2월에야 열리는 심의위 회의 구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선 쌀값을 미리 논의하고 나서 수매에 들어가는데, 충주시는 수매 먼저 하고 쌀값을 결정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친환경농가가 수매한 쌀값보다 심의위에서 결정한 쌀값이 낮으면 그 차액을 되돌려줘야 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신 국장은 “충주시가 공공급식에 대한 조율도 하지 않다 보니 친환경 쌀농가들은 농협과 경쟁하며 쌀을 공급하는 상황인 만큼 단가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충주 시민사회는 학교급식지원센터를 통한 공적 영역에서의 관리를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 주도 푸드플랜, 언제까지?

전남 장성군은 지난해 4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한 ‘지역단위 푸드플랜 기반구축 공모사업’에서 농촌형 최우수지자체로 선정된 푸드플랜 관련 ‘모범’ 지자체다. 지난해 9월 19일엔 장성문화예술회관에서 농식품부와 농협, 상무대 관계자들까지 모인 가운데 ‘장성 푸드플랜 비전 선포식’을 성대하게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범적 푸드플랜이 설계되는 ‘과정’은, 적어도 지역 생산자들 입장에서 봤을 땐 그리 모범적이지 않아 보인다. 지역 푸드플랜을 설계한다면 기본적으로 지역 내 친환경농민들의 입장이 반영될 구조 또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장성군의 푸드플랜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사실상 관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게 지역 생산자들의 입장이다.

장성군의 한 생산자조직 관계자 A씨는 “지난해 민간진영에서 민·관이 지속적인 논의를 거쳐 함께 푸드플랜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한 뒤 “그럼에도 장성군은 지나치게 서둘러서 푸드플랜을 만들었다. 5월말까지 정부에 푸드플랜 사업 신청을 하기 위해 관 차원에서 먼저 푸드플랜을 만들어 제출했다”고 밝혔다.

장성군은 푸드플랜 설계 과정에서 농협중앙회 및 지역농협과 대부분의 논의를 진행했다. 지역 생산자 조직화도 농협 조직을 통해 수행하고자 한다. 장성군수에 의해 구성된 푸드플랜 위원회에 장성군 귀농인협의회, 장성군 여성농업인연합회 등의 조직이 참여하지만, 지난해 4월 위원회를 꾸린 이래 가진 4회의 모임 및 푸드플랜 선포식이 활동의 전부였다. 장성군이 푸드플랜을 위해 꾸린 먹거리사업단의 경우 5명(공무원 3명, 농협 관계자 2명)으로 구성될 예정인데, 전부 계약직이라 안정적 활동이 어렵다.

장성군 측은 “지자체 친환경 학교급식 예산이 12억원에 그치는 데다 규모도 작아 친환경농가 조직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역 친환경농민조직들과 논의해 차츰 조직화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A씨는 “장성군 등 많은 지자체가 푸드플랜을 로컬푸드로만 바라보는 상황이다 보니, 지자체들은 기존 농협 조직을 이용해 농산물을 유통할 뿐 지역 내에서 생산자를 조직하고 친환경농산물을 늘리려는 고민은 하지 않는다”며 “장성군에선 지역 생산자조직 참여를 늘리겠다곤 하지만 아직 말 뿐”이라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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