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락시장, 안녕들 하십니까
[기자수첩] 가락시장, 안녕들 하십니까
  • 권순창 기자
  • 승인 2020.03.0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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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노조도 있었다. 조합원들이 일 15시간 주 6일 육체노동에 허덕이는 동안 조합 지도부는 종신집권 체제를 구축하고 고급세단에 개인기사, 월 600만원의 판공비, 친인척 간부 채용의 권세를 누렸다.

참다 못한 조합원들이 민주화 깃발을 들어올리자 수세에 몰린 지도부는 조합을 해산시켜버렸다. 사실상의 위장해산으로, 조합 민주화를 백지화하고 주도세력을 축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조합 해산을 의결하던 날, 지도부는 반발하는 조합원들을 경비용역으로 저지하고 밀실에서 결정을 내린 뒤 “승리했다”며 기뻐했다.

조합원들이 굴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한심한 건 1만5,000명에 달한다는 가락시장 안의 ‘이웃’들이다. 농산물 유통의 메카인 가락시장엔 관리공사와 도매법인·중도매인을 비롯해 각종 출하자·유통인단체와 회사 등이 있지만 이번 사태에 관심갖고 목소리를 내는 주체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노점상연합 단 둘뿐이다.

관리공사는 “개입할 권한이 없다”며 뒷짐지고 있고 다른 모든 주체는 눈만 말똥말똥, 입을 굳게 닫고 있다. 시장 외부의 수많은 시민단체가 격분하며 들고 일어나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시장 안의 평온함은 여전하다. 해당 노조와 함께 일하던 한 도매법인은 철저하게 사무적인 관점에서 ‘해산된 노조’에 등을 돌리며 오히려 부패세력과의 유착 의혹까지 받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논리로 볼 문제도 아니다. 노조 지도부는 나쁜 짓을 했고 조합원들의 민주화 운동은 매우 정당하다. 민주화를 지지하는 이들은 정의롭고, 사태를 방관하는 이들은 비겁하며, 부패세력을 돕는 이들은 제일 나쁘다. 가락시장 옆 어린이집에 들어가 물어본다 해도 이견이 나올 수가 없다.

내 일이 아니라고 등 돌리는, 정의롭지 못한 가락시장에 실망을 표한다. 가락시장 1만5,000여 종사자들은 오늘, 진정 안녕하신지. 기자는 아마도 가락시장을 거쳐왔을 오늘 점심 밥상을 보며 문득 역겨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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