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공익직불제의 남은 과제

  • 입력 2020.02.23 18:00
  • 기자명 김태연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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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단국대 교수
김태연 단국대 교수

 

지난해 12월「공익직불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던 공익직불제가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에 농식품부는 올해 5월부터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세부 시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협의회를 개최하는 등 매우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 3년여 간 여러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진척되지 못하던 공익직불제가 그나마 본격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된 것만도 다행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정책시행을 위한 기본 틀이 제시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논의를 해야 하는지, 전문가도, 농민도, 정책담당자도 애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정책 시행을 위한 기본방안과 세부규칙을 농식품부가 제시할 것이기 때문에 공익직불제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법률의 제정이나 정책 시행 이전에 많은 논의들이 이뤄지고 이를 반영해 보다 건실한 정책이 만들어졌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우리나라 정책 형성 과정의 특성상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일단 정책을 시작하고 이후에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라도 공익직불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길 바라는 것이다.

공익직불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직불제 개혁의 목적, 공익에 대한 개념 정의, 부정수급 문제의 해법, 이행의무 준수 기준과 점검 절차, 직불금 지급 기준과 금액 등 다양한 이슈들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농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던 직불금 지급 기준과 금액에 대해서는 공익직불제 예산이 2조4,000억원으로 결정되면서 어느 정도 동의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기존 직불금보다 증가된 금액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그 이외의 이슈에 대해서는 농민, 전문가, 정책담당자들 간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즉, 하나의 정책을 올바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정책과 관련된 법적·제도적 체계, 정책의 목적과 관련 개념에 대한 정의, 정책의 시행체계와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대처 방안, 다른 정책들과의 상충성이나 일관성 문제 등이 더욱 중요한데, 이런 큰 틀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세부 지급금액에 대한 합의만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직불제가 마치 농민들이 어느 정도 만족하는 수준으로 돈을 잘 지급하면, 그래서 농민들의 불만이 시위의 형태로 터져 나오지 않으면 임무가 완수되는 정책으로 정부가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현재 공익직불제가 향후 논의해야 하는 과제에 대해서 간략하게라도 짚어보려고 한다.

우선, 농식품부에서 추진하는 주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직불제 개편의 목적이 명확하게 설정돼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단지, 보조금 지급수준과 절차의 문제라면 이렇게 많은 논란이 필요치 않았다. 전체 농정방향의 개편과 관련해 직불제가 어떻게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하는지 농식품부의 입장이 제시되지 않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둘째, 공익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 제시돼 있는 공익 개념을 적용하더라도 매우 불명확한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 정책으로는 공익직불금을 받은 농민들에게 어떤 공익활동을 하라는 것인지가 애매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절실하다. 이것은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반영하자는 주장과도 관련된 문제다.

셋째, 부정수급 문제에 대한 해법이 논의되지 못했다. 기존 직불제에서 부정수급이 어떤 형태로 발생하게 되는 지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처방안이 공익직불제에서도 제대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넷째, 이행의무 내용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단지 기존 직불제에서 적용하던 이행의무에 몇 가지 활동을 부가하는 정도로만 제시되고 있는데, 이것으로는 공익직불제가 기존 직불제와 무엇이 다른지 인식하기 어렵다. 공익직불제에서 이행의무로 적용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제시하고 각각에 대한 농민, 전문가 및 행정담당자의 의견을 듣는 토론 과정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행정 절차와 담당 기관들의 개편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기존 직불제에서 부정수급 문제가 발생되는 이유 중 하나로 행정 절차의 미비와 담당 기관들의 전문성 부족이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익직불제로 개편되는 과정에서도 행정 절차와 기구 개편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여섯째, 농식품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다른 정책과의 상충성 또는 일관성 문제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변동직불금이 공익직불제에 통합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쌀 시장격리제, 생산조정제, 최소가격보장제 등의 대책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공익직불제가 도입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농업생산량 증대 활동에 따른 환경부하를 경감하는 것인데, 오히려 생산량 증대를 장려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다른 정책을 시행하면 공익직불제의 효과는 반감되거나 무력화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어떤 방법이든 무조건 농가소득만 증대시키면 좋은 정책이라는 인식과 그에 따른 농정은 이제 박수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곱째, 공익직불제의 선택형에 대한 대책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단지 기존의 경관보전직불제와 친환경농업직불제를 통합하는 것으로만 제시돼 있을 뿐, 이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새롭게 실시할 것인지, 기본직불제와는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지난해에 통과된「공익직불법」의 내용 및 체계에 관한 문제다. 누구든 해당 법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법률 자체에는 자세한 규정이 제시돼 있지 않고 대부분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도 선택형 직불제에 대한 규정은 기본형에 관한 규정과 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게 제시돼 있다. 따라서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개정 법안이 필요한 상황이 돼 버렸다. 차제에 공익직불제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한 보다 심도 깊은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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