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주체적 실험’으로 만든 경기도 친환경급식 10년

  • 입력 2020.02.21 15:1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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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경기도의 친환경 학교급식 체계가 10년째를 맞이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경기도 학교급식의 특징 중 하나는 지역 농민들이 자주적으로 출하회를 꾸려 계약생산 주체로 나섰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회장 김준식, 경기친농연)의 역할이 컸다.

농민들의 노력으로 2011년 40개이던 학교급식 공급품목은 2016년 79개, 지난해 97개로 늘어났다. 이창한 (재)지역재단 기획이사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보고서 ‘친환경 학교급식의 사회적 의미 실현과 농민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교육과 실천’에서 이러한 성과를 평가하면서 “(경기도 학교급식 발전과 품목 다변화는) 경기도의 차액편성과 꾸준한 관내 친환경농산물 공급확대 정책의 영향도 있지만, 생산자들이 반복된 농사실패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학교급식의 사회적 의미와 친환경농업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경기친농연 내엔 총 10개의 품목연구반들이 있다. 이 연구반들은 같은 품목 생산자 간 재배기술 정보 교환 및 타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친환경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컨대 사과연구반의 경우, 6개 시·군 22명의 반원들이 ‘친환경 사과농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사과는 다른 과수작물과 비교해 예민한 작물 중 하나라 나무가 자란 땅이나 날씨에 따라, 똑같은 농자재를 사용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연천군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홍성우 사과연구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년 농자재 값이 각 농가마다 최소 1,000만원 이상씩 드는 상황에서 거의 모든 사과농가들이 적자를 기록했다. 친환경 사과 재배에 대해 확실한 매뉴얼이 없기에, 농민들은 수많은 실패와 수입 감소를 감수하며 친환경 사과 재배기술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다.”

친환경 사과 재배는 매우 까다롭다. 경기친농연 사과작목반은 친환경사과의 품질 개선을 위해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매년 품질을 개선해 왔다. 그러나 2016년 사과든 2019년 사과든 모두 ‘건강한 친환경사과'임은 매한가지다. 경기친농연 홍성우 사과작목반장 제공
친환경 사과 재배는 매우 까다롭다. 경기친농연 사과작목반은 친환경사과의 품질 개선을 위해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매년 품질을 개선해 왔다. 그러나 2016년 사과든 2019년 사과든 모두 ‘건강한 친환경사과'임은 매한가지다. 경기친농연 홍성우 사과작목반장 제공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주체적 실험’을 멈추지 않은 사과작목반의 노력으로, 2016년 1.8톤에 그쳤던 경기도 학교급식 친환경 사과 출하량은 2017년 18톤, 2018년 25톤, 지난해 36톤으로 늘어났다. 연도별 사과 품질 또한 위 사진과 같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올해도 방제 기술로서 막걸리 트랩(막걸리를 이용한 해충 잡는 덫), 나무와 나무 사이에 코스모스 심기, 페로몬 이용 방식을 활용한다는 게 홍 반장의 계획이다.

“매달 반원들이 모여 농사방식을 공유하고, 어떻게 농사짓는 게 나을지에 대해 토론했다. 선진지 견학과 기술교육도 병행했다. 그럼에도 아직 학교 영양교사들 중엔 ‘무슨 사과가 이래’라며 받지 않으려는 분도 있다. 올해는 사과작목반 회원들이 각 지역 학교들을 방문해 영양교사들과 친환경 사과 재배과정과 품질에 대해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홍성우 반장).”

한편 마늘의 경우 경기도 학교급식에서 가장 공급량이 많은 품목 중 하나인데, 그럼에도 시·군별, 개인별 재배역량 차이가 커서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에 마늘연구반(반장 이승몽)은 지난해 문제 해결을 위해 품목기술 교육과 현장견학, 주간농사정보 시범 제작, 연구반 재배기술 컨설팅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씨마늘과 멀칭·월동비닐 공동구매 사업을 통해 연구반원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도 했고, 정밀농업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다.

그러나 현장견학을 통해 ‘선진 친환경 마늘 재배기술’을 배우려 해도, 선진 친환경 마늘 재배농가를 찾는 것부터 힘들다. 마늘 주산지인 경남 창녕군이나 경북 영천시에서도 친환경 마늘 재배농가는 찾기 어렵다. 이천시 마늘 재배농가인 이승몽 마늘작목반장은 “관행 씨마늘 재배농가를 방문해 터득한 기술을 우리 자체적으로 친환경적 방식으로 바꾸는 식의 노력을 해왔다”고 한 뒤 “그 동안 지자체나 농업기술센터에서도 친환경 마늘 재배기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기에 최근 2년 간 계속 이를 촉구해, 올해부터 경기도 농업기술원에서 친환경 마늘 재배기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반장은 올해 마늘작목반의 목표로 ‘자체 제작 농기계’ 개발 계획을 밝혔다. 기존에 비료를 기계로 살포할 시, 비료가 마늘이 자라날 공간에만 뿌려지는 게 아니라 주변 고랑에까지 새어나갔다. 무농약 마늘 재배농가가 많다 보니, 비가 올 경우 일부 화학비료 성분이 주변 하천으로까지 퍼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이 반장은 마늘이 자라날 공간에만 정확하게 비료를 뿌릴 수 있는 농기계를 자체 제작하겠다는 것이다.

이 반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농가들끼리 ‘실패사례’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며 “농가들이 사소한 정보라도 공유하는 체계를 만들면서, 실패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야 장기적으로 친환경농업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민들의 ‘주체적 실험’이 성과를 거둔다 해서, 언제까지고 지자체 및 농관련 기관들이 농민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치할 순 없다.

이창한 이사는 “친환경농민들 입장에선 관련 기술지원도, 농관련 기관의 현장연구 활성화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농가에 대한 친환경농업 기술 지원, 연구 강화가 필요한 건 물론이고, 경험 많은 친환경농민들을 ‘현장강사’로 육성·지원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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