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전여농 30년사 출판기념식을 지켜보며

  • 입력 2020.02.16 18:00
  • 기자명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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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이 정책위원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지난 6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의 30년 역사를 기록한 ‘서른 전여농, 세상의 힘, 변화의 중심’이라는 제목을 가진 역사서가 발간돼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1970년대 독재의 칼바람으로부터 농촌을 지켜내며, 여성농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시작했던 가톨릭농민회, 기독교농민회 여성농민위원회 시절의 역사까지 거스른다면 무려 반세기의 기록이 담긴 역사적인 책이다. 30년의 기록은 숱한 투쟁의 기록들이다.

농촌부녀, 농가주부로 불리다 여성농민이라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름과 권리를 되찾기까지 수십 년을 투쟁해 왔는데, 지금도 공동경영주로서 걸맞은 권리와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여성농민에게 농민수당이 지급되기까지 앞으로 숱한 투쟁의 기록들을 남겨야 할 것이다. 누구에겐 당연하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이 여성농민은 허투루 쉽게 되는 일 없이 수백 번 수만 번의 외침 속에 주어진 권리였음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까지 때론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하고, 기존의 질서를 흐린다고 눈총 또한 받으면서 아이를 들쳐 업고 먼 길 마다않고 용기 있게 한 발 한 발 나아갔던 선배들의 고귀한 희생이 지금의 농촌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해방이후 미군정, 전쟁, 독재의 시대를 살아오며 농촌은 늘 최대의 희생양이 돼야 했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 아래 저농산물 가격정책이 당연하다는 논리에 농민들 또한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세상을 바꾸려는 이러한 당연한 권리를 찾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때론 정치권력에 순응하는 등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게 지금 농민들의 현실이다.

오는 4월 15일은 촛불혁명 이후의 첫 국회의원 선거다. 그간 국민들의 힘으로 정권을 바꿨고, 지소미아를 폐기시켰다. 미국의 날강도 같은 방위비분담금 요구에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싫으면 나가라고까지 요구했다. 이런 의식 있는 국민들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선거가 이번엔 달라질 것인가 하는 은근한 기대도 해본다.

농민들은 어떠한 투표를 해야 할까? 지금까지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남의 손에 정치를 맡겨놨더니, 돌아온 것은 더 큰 희생과 농촌의 몰락뿐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 가정 살림을 남의 손에 맡기면 어찌 되겠는가. 우리 살림은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해야 가정이 바로 선다. 마찬가지로 정치도 우리가 스스로 후보를 만들고 정치 일꾼을 내보내야 우리를 위해 일을 할 수가 있다. 지금까지는 돈과 권력을 쥔 사람이 정치를 했고, 그들은 그들을 위해서만 일했기 때문에 불공정, 불평등한 사회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제는 농민을 위해 일할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농자천하지대본을 세우고 지속가능한 농촌사회를 유지해나갈 수 있다.

기후위기로 올해 농사도 벌써부터 걱정이 많다. 직불제 개편으로 농민에겐 휴경명령과도 같은 독소조항이 만들어졌고, 환경보호를 명목으로 각종 의무조항이 늘어났다. 때로는 농민이 축산분뇨로 인한 기후위기 주범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그간 생산비도 못 미치는 농사일을 포기하지 않고 국민의 식량을 생산하며, 홍수를 예방하고 공기를 정화시키고 농촌에 휴양지를 만들면서 전통문화를 유지해왔던 공로는 어디가고 기성 정치권에선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인을 볼 수가 없다.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수입농산물로 인해 국내농산물의 판로는 갈수록 없어지고 있어 농업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고령화로 30년 안에 수많은 면단위가 소멸될 거라고 한다. 이 위기로 떨어지는 농업의 추락을 멈춰야 한다.

그걸 멈추게 하는 힘은 우리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식량자급률을 높여 식량주권을 세우고, 제대로 된 가격보장정책을 내오고 성평등한 농촌사회를 만들어 후계인력이 들어올 수 있는 농촌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해 농사는 좋은 종자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강력한 트랙터 부대인 전봉준 투쟁단을 이끈, 광화문 촛불을 만들어내고 박근혜정권을 무너뜨린 농민운동가 김영호 전 의장이 이번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좋은 종자를 고르는 눈은 농민들의 특기다.

이제 제대로 특기를 살려 21대 국회를 바꿔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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