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농사의 기점, 정월대보름

  • 입력 2020.02.16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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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8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이장님 남편’ 김기형씨와 ‘최고령’ 신옥순 할머니의 윷놀이 맞대결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이장님 남편’ 김기형씨와 ‘최고령’ 신옥순 할머니의 윷놀이 맞대결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날, 도시는 점점 팽창하고 농촌은 몰락해갑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농정>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좁히려 연재기획을 시작합니다. 30년을 도시에서만 자란 청년이 1년 동안 한 농촌마을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자 합니다.

정월대보름, 옛날 옛적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었다고 합니다. 속칭 ‘빨간날’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늘날엔 같은 달에 있는 설날과 비교했을 때 인지도와 사회적 관심의 정도에서 확연한 격차를 보이죠. 관지미 어르신들 덕분에 교과서에서 배운 도시 청년은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정월대보름을 챙겨봅니다.

‘정월대보름’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고등학생 시절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늦은 밤, 하굣길에 옆에서 친구가 ‘야 오늘 달 진짜 크다!’하고 한마디 외치면 하늘 한 번 올려다보며 달을 찾아보는 그런 날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도 대개는 그날이 ‘정월대보름’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죠.

시계를 더 돌려봅니다. 저희 집안은 꼭 명절 때가 아니어도 친척들이 가까운 조부모님 댁에서 자주 모이곤 하는데, 어렸을 땐 그 빈도가 더 잦았습니다. 도시에서 자리 잡았지만 어린 시절의 농촌 생활을 추억하는 할아버지 덕분에 저를 비롯한 집안의 아이들은 간접적으로 그 문화를 체험할 기회가 제법 있었죠. 겨울이 오면 할아버지와 함께 근교의 얼어붙은 저수지에 가서 나무로 만든 썰매를 타고 사촌들과 즐겁게 얼음을 지치고 팽이를 돌리는 것이 바로 겨울 주말의 일상이었습니다.

썰매와 함께 한 가지 더 기억나는 겨울날의 추억은 정월대보름의 밥상입니다. 정월대보름이 낀 주말에 모일 때면 할머니께선 밥에 콩이며 밤, 팥 등 온갖 먹기 싫은 것들(?)을 넣어주시곤 했죠. 어렸을 땐 흰쌀 이외에 밥에 뭔가 들어가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이날은 특히나 할머니 댁에 가기 싫어했었는데, 지난 날 쌀 한 톨이 귀했던 시절을 겪은 농촌의 어른들이 보면 아마 혀를 찰 광경이었을 겁니다.

저를 비롯한 집안의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도시의 식문화는 몰라보게 변했고, 특별한 밥상을 차리거나 민속놀이를 즐기며 정월대보름을 보내는 문화 역시 이제 집에서 사라지고 말았네요. 이제 32세가 돼 버린 청년은 토요일이었던 올해의 정월대보름 또한 주중 야근에 찌들었었다는 핑계로 침대에서 흘려보내고 있던 차, 우렁차게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려 잠에서 깹니다.

“기자님, 뭐해? 대보름이라고 다 같이 먹을 건데 내려와서 같이 점심 먹어~.”

마치 가까이 건넛마을에 사는 조카를 부르는 것 같은 유주영 이장님의 전화에 잠시 어안이 벙벙합니다. 부르시지 않아도 수시로 들르거니와, 때때로 일 있다고 부르실 적엔 특히나 못 가겠다한 적이 없으니 습관대로 알겠다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습니다만, 비몽사몽한 와중 ‘가능한건가’하는 생각만 머리를 맴돕니다.

제 예상과 달리 다행히 시간은 10시 30분, 얼른 씻고 나서면 어르신들이 다 드시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관지미 어르신들 덕에 약 20년 만에 정월대보름을 챙겨보게 됐습니다.

“언제 들어왔어!? 우리 여태 윷놀고….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데.”

“아이고, 이제 마을 청년이 다 됐네. 매주 보네 그냥.”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주말의 고속도로는 눈에 띌 정도로 비어 있어, 다행스럽게도 식사가 막 시작되려는 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큰 보리밥그릇을 하나 받은 저는 눈치를 살피다 어르신들을 따라 고추장과 각종 보름나물들을 넣어 섞어봅니다. 시금치 같은 익숙한 것들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캔 아주까리(피마자), 취나물 등 생소한 나물도 접했는데, 처음 입에 대어 본 아주까리는 쓴 맛이 강해 놀랐지만, 고추장 그리고 다른 나물들과 함께 비벼 먹다 보니 그 쌉쌀함이 뿜는 존재감에 곧 매료됐습니다.

본래 농촌에서는 정월대보름이 되면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커다란 민속놀이 행사를 연다고 합니다. 진천군에서는 진천읍 백곡천 둔치 넓은 부지에서 크게 열리는데, 윷놀이·연날리기·제기차기·줄다리기 등의 민속놀이판도 벌이고, 달집태우기·부럼깨물기·귀밝이술 마시기 같은 보름의 풍습을 재현하기도 합니다.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으려 노력한다는 점에서도 훌륭하고, 또 주민들 입장에서는 점점 에너지를 잃고 있는 농촌에서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라고도 하네요.

그러나 올해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정월대보름 행사가 취소됐고, 저도 읍에는 나가보지 못하고 어르신들과 조촐하게 마을회관에서 대보름을 지내게 됐습니다. 사실 축산업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전염병도 보통 겨울철에 발생하기 때문에 정월대보름 행사의 취소는 왕왕 있어왔다고도 하는데, 올해는 구제역도 조류독감도 발생하지 않았기에 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기자님 올라가기 전에 윷 한 번 놀아봐야지. 얼른 앉아서 해 봐.”

그리하여 제가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윷놀이 뿐. 윷놀이야 저희 집안에서도 늘 명절마다 다섯집이 서로 대항전을 펼치는지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어르신들은 훨씬 어려운 규칙으로 윷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얼굴 뵙기가 힘든 김홍덕·김순덕씨 부부도 오늘은 신이 나 회관에 머물고 계십니다.

“이게 규칙이 있어! 못 넘어가면 아웃이야! 낙방!”

윷놀이가 이른 바 ‘로컬 룰(지역 규칙)’이 많다고는 하지만… 제법 큰 모포 가운데 선을 긋고 던진 윷이 상대방 쪽 절반 안에 안착하지 않으면 던진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생전 처음 접하는 규정을 따른 결과 제 던지기 성공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해 내리 세 판을 지고 말았습니다. 속출하는 장외 홈런으로 하나둘 판에 모여든 어르신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것에 만족해야 했죠. 모든 게임이 1:1로 이뤄져 속도가 매우 빠른 것도 재미있는 특징이었습니다.

2년 동안 농민운동을 한다고 바빴던 김기형씨는 봄이 오기 전에 하우스를 치워야 합니다. 멜론을 매달았던 고리를 치우고, 바닥의 비닐을 벗겨낸 뒤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습니다.
2년 동안 농민운동을 한다고 바빴던 김기형씨는 봄이 오기 전에 하우스를 치워야 합니다. 멜론을 매달았던 고리를 치우고, 바닥의 비닐을 벗겨낸 뒤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습니다.
2년 동안 농민운동을 한다고 바빴던 김기형씨는 봄이 오기 전에 하우스를 치워야 합니다. 멜론을 매달았던 고리를 치우고, 바닥의 비닐을 벗겨낸 뒤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습니다.
2년 동안 농민운동을 한다고 바빴던 김기형씨는 봄이 오기 전에 하우스를 치워야 합니다. 멜론을 매달았던 고리를 치우고, 바닥의 비닐을 벗겨낸 뒤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습니다.

 

곧 새로운 농사를 준비하는 시점에 마침 떠오르는 첫 보름달은 농경사회에선 매우 중요했다고 전해집니다. 꽉 차오른 달이 풍요를 상징한다고 믿었던 우리 세시풍속을 생각하면, 정월대보름이 명절이 된 까닭은 새해의 첫 보름달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겠죠.

공교롭게도 이젠 풍년이 오히려 나쁜 일이 돼 버리기도 하는 세상이 왔습니다만, 어쨌거나 여전히 새 농사의 상징과 같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대보름 지났으니) 이제 고추 시작해야지. 씨는 이렇게 하나하나 펼쳐야 돼. 한 봉에 씨 1,000알이면 100평이 나와. 이전에는 (육묘장에서) 전문으로 기르는 사람한테서 고추모를 사다 심었어. 젊을 때 몸 안 아플 때는 그렇게 해서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나이 먹어서 욕심도 버렸고, 집 뒤에 조그만 하우스가 있으니까. 이거 품이 많이 들어서 하루라도 안 돌보면 죽어버려.”

정월대보름을 보낸 관지미의 어르신들도 이제 논과 밭을 트랙터로 새로 갈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하우스를 치우고, 고추씨를 키우며 새 농사 준비를 시작합니다. 강창성 할머니처럼, 고추를 씨앗부터 길러 심을 사람들은 이제 시작해야 하는 시깁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수박과 멜론, 콜라비를 연달아 심었던 이장님네 하우스 토양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네요. 바야흐로 봄에는 저도 어르신들을 도우며 농촌노동에 진지하게 접근해봐야겠습니다.

나이 들어 농사를 줄인 김상만·강창성씨 부부는 이제 집 뒤에 조그만 하우스를 마련해 씨앗부터 고추를 키웁니다. 상토 위에 올린 씨앗을 최대한 균일한 간격으로 펼치고 있네요.
나이 들어 농사를 줄인 김상만·강창성씨 부부는 이제 집 뒤에 조그만 하우스를 마련해 씨앗부터 고추를 키웁니다. 상토 위에 올린 씨앗을 최대한 균일한 간격으로 펼치고 있네요.
나이 들어 농사를 줄인 김상만·강창성씨 부부는 이제 집 뒤에 조그만 하우스를 마련해 씨앗부터 고추를 키웁니다. 상토 위에 올린 씨앗을 최대한 균일한 간격으로 펼치고 있네요.
나이 들어 농사를 줄인 김상만·강창성씨 부부는 이제 집 뒤에 조그만 하우스를 마련해 씨앗부터 고추를 키웁니다. 상토 위에 올린 씨앗을 최대한 균일한 간격으로 펼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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