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5년 후

  • 입력 2020.02.16 18:00
  • 기자명 주영태(전북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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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태(전북 고창)
주영태(전북 고창)

다닥다닥 붙은 시골마을에 수수깡 담장과 담장이랄 것도 없는 흙무더기로 집과 집의 경계가 돼 있다. 모깃불을 놓으면 온 동네가 방역이라도 한 것처럼 매케한 연기 가득하지만 토방에 모여 앉은 가족은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영광장에 나가 할머니는 장닭을 두 마리 사오시고 솥에 닭백숙을 끓이셨다. 대가족 층층이 두 살 터울씩의 7남매, 두 마리 장닭으로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닭을 삶아 잘게 찢어 죽에 수북하게 놓아 주니 시각적인 배부름이 있다.

막내들은 놋쇠그릇 한가득 다 먹고도 아쉬움이 남는지 닭다리 뼈를 이로 깨물어 날카롭게 조각난 뼈를 이용하여 닭 골수를 빼먹으며 내 닭다리에 골수가 더 차있다고 서로 우김질에 티격태격한다. 그러다 아버지의 곁눈질과 다문 입에서 나는 “쓰으” 소리에 주눅이 들어 서로 눈빛으로 티격태격하고 언제 잠들었는지 할아버지의 부채질에 세상 시원한 꿈을 꾼다.

어릴 때 가족들과 모깃불 놓고 평상이나 덕석을 깔고 앉아 저녁식사를 하거나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먹던 것이 머릿속에 박혀있다. 이런 꿈같은 추억이 나를 농사로 끌어들였는지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 내음 아직도 킁킁거리면 맡아질 것 같다. 땅은 그렇게 나에게 할아버지고 할머니고 부모님이고 형제 자매다. 그리고 이제 그 땅에서 아들도 보인다.

작년 연달아 오던 태풍에 탈탈 털렸다. 땅도 나도. 나락농사 지어 빚을 다 갚을 수 없어 땅을 내어주고 난 취직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인데 그 맘이 쉽사리 정리되지 않아 계속 술추렴을 한다.

바라봐주시고 지켜 볼 수밖에 없는 부모님은 아들의 그런 심사를 꿰뚫어 보고 있으신지 크게 나무라지도 않으시고 묵묵히 저 하는 대로, 불같은 성격을 가지셨던 아버지도 이제 연세가 되시니 트랙터를 내놓고 흥정하는 아들을 두고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고 그저 심성 고우신 촌로로 흐름대로 지켜만 봐주신다. “땅을 팔아 장사라도 한 번 해 볼래?” 어떤 날엔 그런 말씀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아버지 땅을 팔아버린다면 난 아마 소중히 간직했던 어릴 때 좋았던 추억까지 다 팔려버릴 것 같아 “그냥 선배네 공사판에 취직이나 할게요” 하고 임대를 내주고 아무런 일을 할 의지 또한 없이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

땅을 내어주고도 할 일은 남아있다. 임대한 형님이 한 뼘 농사라도 지을 수 있게 밭정리를 해준다. 굳이 해주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사계절 풍광 좋은 나무들을 베어냈다. 밤나무, 아카시아나무, 미루나무, 개복송나무, 너도밤나무, 싸릿대 등등. 그늘을 내어주고 꽃가루를 내어주고 해서 농약도 안치고 그저 저 크는 대로 놔 둔 것인데 임대하는 아저씨의 요구대로 다 들어주고 직접 다 베어주었다.

남의 손에 베어지는 나무들의 꼴을 못 보겠어서 그리 한 것인데 마음속은 마구 방망이로 쳐대는 것처럼 벌렁벌렁해졌다. 가혹하다. 내 땅은 미생물이 가득하고 똥거름을 넣지 않아도 아주 좋은 땅이고 내 게으름과 함께 산 땅인데 이제 앞으로 5년 동안에 각종 화학비료와 살균제, 제초제가 투여돼 내 땅은 다시 숨 쉴 수 없고 죽은 땅이 될 것이란 생각에 미쳤을 때 눈물이 났다. 게으른 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아닌 부지런한 주인의 발자국 소리에 땅도 숨막혀 할지 모를 일이다.

아낌없이 다 품어주는 땅에 손발 묻고 되돌아올 날을 기약하며 잘 버텨 주기를 기원한다. 부지런에 또 부지런을 떨어 앞으로 5년 후 8,000평 내 땅에 내 땀을 묻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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