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중동 바람① “사우디에 다녀왔습니다”

  • 입력 2020.02.16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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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자, 여기 있는 사우디 지도를 잘 보세요. 이쪽에 표시된 이 지역이 나푸드 사막인데 면적이 5만7,000평방킬로미터예요. 오른편에 있는 이 지역은 다나 사막이고, 남쪽에 있는 이곳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룹알할리 사막입니다. 그 면적이 한반도의 세 배나 되는 65만 평방킬로미터예요. 이 거대한 사막에서 모래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집니다. 돌풍에 모래만 날리는 게 아니에요. 돌멩이까지 섞여서 몰아친다니까요. 이런 경우 재빨리 현장 건물 안으로 대피를 하지 않으면 큰일 나요. 게다가 예고 없이 후끈후끈한 열풍이 확 몰려오기도 하는데, 군대 화생방 훈련은 저리 가라예요. 이런 악조건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의 건설역군으로서 씩씩하게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각오가 돼 있는 사람만 이 자리에 남고, 자신 없는 사람은 지금 일어서서 나가세요. 어어? 우르르 몰려 나갈 줄 알았더니 아무도 나가는 사람이 없네.

1970년대 말, 혹은 80년대 초에 이른바 ‘오일달러’를 벌기 위해 중동의 건설현장으로 떠나는 노동자들이, 출국 직전에 해외개발공사에서 마지막 소양교육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노동자 여러분이 사우디에 가서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차도르를 쓴 여자가 지나가거든 절대로 눈길을 주어서는 안 돼요. 둘째, 술을 마시는 것은 이슬람 율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돼 있으니까….

강사의 연설이 이어진다. 하지만 관청에서 받는 모든 교육이 그러하듯, 역시 재미는 없다.

그렇다면 동네 식품점 평상이나 혹은 미용실에서 주고받는 이런 대화는 어떨까?

-저쪽 삼거리에 양품점 하나 새로 생겼던데?

-우리 옆집 사는 여자가 차린 거야. 그 여자 남편이 사우디에 4년이나 있다가 왔대.

-아이고, 우리 집 애 아빠도 사우디에나 가서 한 3년 있다 왔으면 좋겠구먼, 뭔 놈의 기술이 있나 빽이 있나.

-아, 그 얘기 들었어? 정육점 뒷집 춘길이라고 있잖아. 사우디에 가서 3년 동안 모래바람 마시면서 뼈 빠지게 벌어서 부쳐준 돈을 글쎄, 마누라가 딴 남자하고 바람이 나서 다 털어먹었다지 뭐야. 귀국하던 날 죽이네, 살리네, 난리도 아니었어.

사우디.

이전까지만 해도 생소하던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가, ‘사우디’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일상의 화제 속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던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다.

1973년 말의 석유파동직후에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400만 달러의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함으로써 불붙기 시작한 한국기업의 중동지역 건설 붐은 요르단, 바레인,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등지로 번져나갔다. 바야흐로 중동에서 한국이 세계 제일의 건설 수출국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로의 건설용역 수출 규모가 가장 컸기 때문에, 쿠웨이트나 이라크로 일하러 떠나는 노동자들을 보고도, 사람들은 그저 “사우디 간다”라고 얘기했다.

칠팔십 년대, 열사의 땅에서 거세게 몰아치는 모래바람을 맨몸으로 견뎌내며 오일달러를 건져 올렸던 사람들, 그 ‘중동 특수’의 빛과 그림자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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