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장 선거 유감

  • 입력 2020.02.09 19:02
  • 수정 2020.02.09 19:03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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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진행이 되고 있는 모양인데 소리가 전혀 안 나오네.” “직원한테 소리 좀 켜달라고 해봐요.” “뭔 말인지 하나도 안 들려서….” 제24대 농업협동조합중앙회장 선거가 열린 지난달 31일 농협중앙회 본관 2층에 마련된 임직원 대기실에 모인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던 이야기 중 일부다.

대기실엔 선거가 진행 중인 1층 대회의실 장면이 모니터로 생중계되고 있었으나 음성은 일절 끊긴 채였다. 10명의 후보들이 정견 발표를 하는 내용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연설이 끝나고 두 손을 치켜들거나 무릎 꿇어 절을 하는 후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옛 찰리채플린 시절 무성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간선제다. 전체 조합장 1,118명 중 대의원조합장 293명(회장 포함)에게만 투표권이 있다. 당연히 선거가 진행되는 대회의실엔 선택받은 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2층에 마련된 기자 대기실에서 소리 없이 중계되는 대회의실 모습만 하릴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사를 쓸 수 있는 ‘소스’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농협 관계자는 “원래 대의원회는 비공개고 현재 생중계되는 영상도 CCTV 영상이다. 선거를 주관하는 인사총무부와 협의했지만 음성 지원은 안 되는 걸로 결론이 났다”며 “정견 발표 내용은 나중에라도 알려 드리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앞으로 4년간 농협을 진두지휘할 회장을 뽑는 선거다. 농협이 우리 농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막대한 비중을 볼 때 회장선거는 그만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1,118명의 조합장, 210만 농민조합원들에게 회장 후보들의 정견 발표 내용은 향후 농협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이 중차대한 내용을 대의원회 행사라는 이유로 비공개로 진행하는 농협의 판단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결선투표에 오른 후보들이 5분 동안 무엇을 중점적으로 강조했는지조차 전혀 알 길이 없다. 선거 당일까지 ‘깜깜이 선거’라는 오명을 떨쳐내지 못하는 농협의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다. 과연, 농협은 시대의 변화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대의원 간선제라는 시대를 역행하는 선거제도부터 바꿔야 하지만 무엇보다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그들만의 잔치로 만든 농협 담당자들의 의식부터 제대로 바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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