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기후위기 극복, 농민이 먼저 시작할 수 있다

  • 입력 2020.02.09 18:00
  • 기자명 김현희(경북 봉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현희(경북 봉화)
김현희(경북 봉화)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한겨울을 나기 위해 쌓아놓은 땔감이 절반이나 남았다. 예년 같으면 간당간당 모자란 땔감을 준비하러 나무를 해야 할 때지만, 겨울 동장군은 힘을 잃었고 폭설 대신 겪어 보지 못한 겨울 장대비가 지나갔을 뿐이다.

17년 전 처음 시골에 와서 어르신들께 농사를 배울 때 아랫집 할아버지는 “농사는 기술보다 때를 맞추고 절기에 맞추면 된다”고 하셨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고개는 끄덕끄덕 했지만 잘 알지 못했다. 막상 우리가 직접 농사를 해보니 절기는 농사의 중요한 달력이고, 자연의 시계에 맞춰 장을 담고, 파종을 하고, 농사의 중요한 과정을 결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사뭇 멋지게도 느껴졌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절기의 흐름은 조금씩 어긋났고, 이제 기후변화를 온 몸으로 느낀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느끼는 공동의 불안감이기도 하지만 현실 농업에선 막다른 골목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농업정책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생산성 위주 규모화, 시설화에 집중돼 땅과 물, 사람을 배제하고 축산과 대규모 농가와 관련 사업자들의 이익이 우선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농업, 농촌에서부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부터 바꿔야 농업정책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됐다지만, 때에 맞지 않은 가뭄과 홍수, 폭우와 폭설 등의 자연재해는 하늘에 기대어 사는 농민들에게는 어쩌지 못하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의 대안으로 시설농이나 대규모 기업농, 스마트팜, 인공지능 농사법을 내놓은 지 오래다. 인위적으로 물을 대고 전기와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시설투입 쪽으로 간다면 그 결과로 지하수의 고갈과 토양오염, 에너지 고갈의 원인이 될 것이고, 이는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이라도 현재 일어나는 농업·농촌의 현실을 좀 더 솔직하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농업·농촌의 현실에 대해 농민도 소비자도 정보가 깜깜하다.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정보는 닫히고, 생산성을 높이고 때깔 좋은 농산물이 계절에 상관없이 집 앞까지 총알 배송돼 오는 걸 농업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크게 오해하고 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겨울 딸기는 겨울 내내 3중 하우스 안에서 기름을 때 가면서 흙속의 미생물이나 영양이 아니라 영양제로 키워낸 농산물을 포장해서 경제적 여유 있는 사람들이 소비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는 먹거리가 있음에도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이야기할 토론의 장은 없고 지불의 방식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농민, 농업, 농촌의 실상과 존재가치를 이해시키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소통하고 이해해야 한다.

소비자는 제철음식과 어떠한 방식의 농법으로 농산물이 내 식탁에 오르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생산하는 농민은 먹거리를 책임지는 주체로서 안전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해야 한다. 최소한의 농약과 비료, 농자재를 사용하는 농업 방식, 가능하다면 생태농업, 친환경농업의 전환과 소농을 살리는 길 없이는 농업의 지속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소농으로, 친환경농민으로 살아가는 길은 너무나 어렵다.

농민들이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대의 길에 나서서 건강한 먹거리 생산자로서의 자부심을 되찾기 위해서는,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제고하고 소농을 살리는 공익형직불제와 농민수당의 안정적 시행은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농업의 지속성은 무엇보다 건강한 토양에서 건강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데서 담보된다. 땅을 살리고, 생물다양성을 회복하고, 생명을 지키는 일은 농민이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농민은 가장 먼저 기후위기 극복에 나서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내가 쓰고 버리고 마는 무책임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자세가 앞으로 우리가 남겨줄 미래에 대한 사랑과 희망일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