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앗은 돈벌이 수단 아니다

토종씨드림 주최 정책토론마당

  • 입력 2020.02.09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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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일 전북 완주군 경천애인회관에서 열린 토종씨드림 ‘씨농제’ 정책토론마당.
지난 1일 전북 완주군 경천애인회관에서 열린 토종씨드림 ‘씨농제’ 정책토론마당.

20세기 들어 토종씨앗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됐다. 이는 강대국 종자기업들이 토종씨앗을 ‘유전자원’으로 바라보며 타국에서 훔쳐온 씨앗으로 새 종자를 만들고, 그 종자에 특허를 매겨 독점적 권리를 보장해 온 상황과 관련이 있다.

토종씨드림(대표 변현단)은 지난 1~2일 전북 완주군 경천애인회관에서 ‘씨농제’를 개최했다. 행사 첫날인 1일엔 토종씨앗 정책토론마당이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경북 봉화군 농민 박성인씨는 토종씨앗으로 농사짓는 소농으로서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봉화 산골에서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 F1 종자로 고추농사 짓는 농가들이 1,000근을 수확할 때 토종고추는 200~300근이 수확된다. 그럼에도 관행 고추는 한 근에 3,800~4,000원으로 팔리고 토종고추는 한 근당 3,000원까지 떨어질 정도로 가격이 불안정하다. 시장에만 농산물 가격조절 기능을 맡기니 토종씨앗과 이를 재배하는 농민이 설 자리가 없다. 상황이 이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토종농사를 권하면 대부분 ‘토종씨앗 농사로 나온 수확물은 못생긴 데다 잘 안 팔리고 수확량도 적다’며 주저한다.”

토종씨앗 재배농민들이 설 자리가 좁을뿐더러, 농민들은 토종씨앗 자가채종 권리마저 위협받고 있다. 김은진 원광대 교수는 “씨앗은 원래 농민들이 자연스럽게 나눴던 것이었음에도, 언젠가부터 종자기업들에 의해 사고 파는 상품이 됐다”며 “그 과정에서 농민은 씨앗의 주인에서 종자기업에 의해 개량된 종자를 기업으로부터 사야하는 사람들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농민이 씨앗에 대한 권리를 빼앗기면서 종자다양성도 약화됐다. 과거 농민들이 스스로 씨앗을 받아 농사짓던 시대엔 전 세계에 약 600만종의 종자가 있었으나, 지금 전 세계에서 주요 작물로 농민들이 기르는 종자는 120종 밖에 안 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 120종은 종자기업들이 생산성 향상 목적으로 만든 개량종자다. 여기서 말하는 개량종자란, 잡종강세육종이나 유전자조작(GM) 육종으로 만들어낸 종자를 말한다.

현재 국내 종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잡종강세육종 종자의 다수확을 위해선 비료도 많이 필요하다. 또한 잡종강세육종의 1대잡종(F1)을 구입해 농사짓더라도, 2대잡종에선 열성 형질이 나타나 수확량이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농민들은 매년 F1 씨앗을 구입해 농사지어야 한다.

2008년 기준 세계 10대 종자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약 67%였다. 일부 종자기업이 씨앗을 이처럼 독점할 수 있게 된 원인으로, 먼저 강대국들이 제3세계에서 자행한 생물해적질, 즉 타국의 토종씨앗을 ‘유전자원’이라 여기며 수집·채취해 간 행태가 거론된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은 19세기부터 유럽열강과 미국의 생물해적질 각축장이었다.

둘째로 해적질해온 씨앗을 강대국 기업들이 독점하도록 부추기는 국제협약들도 문제다. 우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에게 필수 적용되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의 경우, 일단은 식물을 특허 대상에서 제외하긴 한다. 그러나 식물 변종에 대해선 ‘회원국은 특허나 효과적인 독자 제도, 또는 양자의 혼합을 통해 식물 변종의 보호를 규정한다’고 명시해 사실상 종자독점을 인정했다.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이 제정한 UPOV 협약은 ‘육종가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신품종 종자를 보호품종으로 등록하고, 해당 품종을 만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협약이다. 그러나 ‘육종가의 권리’엔 농민의 자가채종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은 2002년 이 협약에 가입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 종자시장이 작아 기업들이 농민들에게 자가채종에 대해 직접적으로 시비걸진 않지만, 농민의 자가채종을 온전히 보전하는 법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언제든 농부권은 위협받을 수 있다”며 “종자독점을 막기 위해선 농민들이 기업에서 독점하려는 씨앗을 오랜 세월 재배하고 보전해 왔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토종씨드림의 씨앗보전 활동은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덕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대표는 토종씨앗 보전을 위한 또 하나의 장으로서 도시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토종씨앗으로 농사짓는 도시농부들이 토종 농산물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재배하는 농가의 활성화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지역교류형 농부시장, 마을부엌, 토종꾸러미 활성화, 도시 푸드플랜에서의 토종농산물 수요 창출 등을 통해 토종씨앗 운동은 도농상생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토종씨드림은 토종씨앗 보전과 이력 추적을 위한 토종씨앗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렸다. 지난해 11월부터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올해 안에 시스템 구축이 완료될 전망이다.

토종씨드림은 또한 이번 달 출간을 목표로 토종씨앗 도감을 준비 중이다. 도감엔 어느 토종씨앗이 어느 지역, 어느 할머니가 보전해 왔는지부터 씨앗의 특성, 파종시기 등에 대한 내용들이 담길 예정이다. 도감 출간에 앞서 토종씨드림은 지난달 27일 ‘토종콩, 토종감자 특성집'을 출간한 바 있다. 이 특성집은 전남 곡성군과 전북 고창군, 경북 봉화군 세 지역에서 토종콩과 감자를 심어 기후변화에 따른 지역 적응성을 확인한 결과를 정리한 자료집이다.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는 “농민들이 앞으로 나올 도감과 데이터베이스를 참고해 연구원이자 육종가로서 토종씨앗 확대에 동참해 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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