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91] 체육관 대통령과 농협중앙회장

  • 입력 2020.02.09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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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농협중앙회장이 새로 선출됐다. 그나마도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명색이 5년차 농협 조합원인 나는 선출 날짜도 잘 몰랐거니와 선출된 회장이 조합장 출신이라는 것 외에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한다. 문제는 지역농협이나 중앙회에서 조합원들에게 회장 후보로 누가 출마했으며 그들이 무엇을 한 사람인지, 더 나아가 비전은 뭔지 등 일체의 정보도 공식적으로 제공한 적 없다는 사실이다. 농업협동조합의 주인인 농민 조합원은 정작 안중에 없는 것이다.

중앙회 회장은 전국 1,118명의 조합장 중 293명의 대의원이 1차, 2차 투표로 선출한다. 293명의 조합장들에게만 잘 보이면 회장이 될 수 있는 구조며, 어떤 수를 써서라도 과반수인 147명 이상의 표만 확보하면 회장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250만명에 달하는 전국 농민 조합원들의 의견이 아닌 전체의 고작 0.011%에 불과한 290여명의 조합장 대의원에 의해 중앙회 회장이 결정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조합장이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됐다고 해서 조합장이 조합원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협동조합인 농협의 조합장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놓은 일꾼에 불과할 뿐이다. 일꾼들 중 일부가 중앙회 회장을 뽑을 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재의 농협중앙회장은 상징적인 자리가 아니다. 재벌총수에 버금가는 막강한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출구조 하에서 출마자와 대의원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중앙회장선거만 끝나면 선거법 위반 소송이 반드시 뒤따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중앙회 회장이 얼마나 막강한 자리인지 역대 선출직 회장 중 감옥에 가지 않은 사람이 없고, 아직 감옥에 있는 사람도 있다. 온갖 비리의 온상인 자리다. 선출방식부터 잘못된 마당에 재임 중 뭘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군사독재시절 전두환이 장충체육관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을 모아놓고 스스로 대통령에 당선되던 모습이 연상돼 씁쓸하기까지 하다. 

선거제도에서 직선제만이 민주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시장, 군수, 시·군의회 의원, 교육감까지도 직접선거로 뽑을 뿐만 아니라, 도의원은 물론 도지사도 국민이 직접 뽑는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도 도지사나 도의원 등이 모여 뽑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투표해 선출한다. 우리는 이런 직접선거제도에 익숙해졌고, 오랜 세월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제도는 안정됐다. 성숙한 시민의식도 가지고 있다. 이 땅의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농협중앙회는 1961년 출범 이후 한 번도 조합원이 회장을 직접 선출한 적 없다. 관에서 임명하거나 조합장들이 모여서 뽑았고 근래에는 소수의 대의원 조합장들이 모여 선출하고 있다. 이렇듯 잘못된 선출 시스템 아래 60여년을 살았으니 농민 조합원들은 그것이 잘못됐다는 사실조차 모를 만큼 관행으로 고착화된 것 같고, 잘못된 걸 말할 기운조차 없어진 건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뽑은 조합장과 지역농협에 대해서도 주인의식이 희미한데 중앙회는 오죽하랴 싶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돼버린 오늘이 아플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농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선출은 일부 조합장들에 의한 간선제가 아니라, 전국의 농민 조합원들에 의한 직선제로 바꿔야 한다. 농업협동조합 개혁은 이로부터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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